안토닌 드보르자크는 1892년 미국 내셔널 음악원 원장으로 초빙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그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향수병에 시달렸다. 그가 미국에서 쓴 교향곡 9번은 ‘신세계에서’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이 곡의 2악장 주선율은 이른바 ‘꿈속의 고향’이라는 노래로도 불리는 유명한 부분이다. 처음 잉글리시 호른(오보에와 비슷하지만, 더 크며 더 낮은 음을 내는 악기)으로 연주되는 이 선율은 악장 중간부를 거쳐 다시 나오고 현악이 이를 이어받는다. 그런데 선율이 계속해서 이어지지 못하고 자꾸만 끊어진다. 악보를 보면 쉼표 위의 페르마타(길게 끄는) 기호가 연속해 등장한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 2악장 후반부 / 사진=필자 제공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 2악장 후반부]
왜 선율이 자꾸 끊어질까? 이 선율을 처음 들을 때부터 ‘아, 드보르자크는 고향이 그리워 울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도 청소년 음악회 해설에서 페르마타가 붙은 이 쉼표들은 ‘내면의 울음이 겉으로 터져 나오지 못하고 목이 메는 것’이라며 ‘이는 침묵이 음악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드보르자크 전문 연구가인 마이클 베커만도 이 부분을 롱펠로의 시 ‘하이어와타의 노래’ 중 장례식 장면과 연관 지으며 ‘이 부분에서 선율이 파편화되는 것은 흐느낌에 의해 끊어진 상태다. 고국에 대한 향수와 상실감이 커져 더 이상 노래를 이어갈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3번은 후원자 갈리친 후작에게 헌정된 3곡 (현악사중주 12, 13, 15번) 중 한 곡이다. 이 곡들을 쓸 당시 베토벤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 악보에 베토벤 자신이 ‘병에서 나은 이가 신에게 바치는 감사의 노래’라고 적었을 만큼 그는 만성적인 소화기 질환과 간 질환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 어떤 여성과도 삶의 마지막까지를 함께 할 결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게 된 그는 오로지 내면의 귀에 의존해 작곡을 이어갔다.
가장 그를 괴롭힌 일은 그가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가졌던 조카 카를과의 불화였다. 카를의 양육권을 둘러싼 제수 요한나와의 소송전에서 그는 1820년 승소해 카를의 후견인이 됐지만 카를과 그는 끊임없이 충돌했으며 결국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기 전 해이자 이 현악사중주들이 나온 직후인 1826년 카를은 자살을 시도한다. ‘갈리친 4중주곡’ 세 곡이 나올 당시는 두 사람의 갈등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였다.
세 곡 중 실질적으로 가장 나중에 쓰인 현악사중주 13번 B플랫장조의 5악장은 ‘카바티나(서정적이고 단순한 노래라는 뜻)’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그 말 그대로 단순하고 서정적인 선율이 흐른 뒤 중간부에는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어 제1바이올린에 새로운 선율이 나온다.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어딘가 불연속적인, 리듬이 예측하지 못하게 끊어졌다 이어지는 모습이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3번 5악장 ‘카바티나’ 중간부 / 사진=필자 제공
[베토벤 현악사중주 13번 5악장 ‘카바티나’ 중간부]
이 부분 악보에 베토벤은 ‘Beklemmt’라고 적었다. 독일어로 ‘가슴이 답답한’ ‘압박감을 느끼는’, ‘숨이 막히는’이라는 뜻이다. 베토벤의 친구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카를 홀츠에 따르면 베토벤은 이 부분을 쓸 때 많은 눈물을 흘렸고, 곡을 끝낸 뒤 이 부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미국 음악평론가 마이클 스테인버그는 책 ‘4중주: 리스너스 가이드’에서 이 부분에 대해 ‘감정에 질식된 주인공이 더 이상 노래를 잇지 못하고 흐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일리겐슈타트 베토벤 기념관에 소장된 베토벤 흉상 / 사진출처. 위키미디어
두 곡의 ‘눈물 음악’에 대해 조사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의 2악장 아다지오에 대해서도 ‘한숨과 슬픔’으로 해석한 평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영국 음악학자로 모차르트와 라모 음악의 권위자인 커스버트 커들스턴은 그의 책 ‘모차르트와 그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이 악장의 도입부에 대해 ‘피아노가 주제를 제시하는데, 이는 한숨과 쉼표로 끊어지는 폭넓은 선율이며, 체념한 듯하면서도 거의 미소를 띠는 듯한 슬픔을 머금고 있다’고 썼다. 아마도 악장이 시작되는 이 부분일 것이다. 8분 쉼표 두 개로 이뤄진 묵음(默音)의 부분이 연속해서 등장한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시작 부분 / 사진=필자 제공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시작 부분]
사실은 나 자신도 이 악장을 ‘눈물’로 표현한 일이 있다. 그 근거는 약간 다르다. 2014년의 한 칼럼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의 두 번째 악장을 오디오에 걸어봅니다. 나지막하면서 서글픈 듯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옵니다. 그런데 이 선율, 침착한 듯한 인상과 달리 실제로는 이어지는 음표끼리 거의 한 옥타브씩 널을 뜁니다. 악보 68번째 마디에서는 무려 19도(열여덟 음 차이)나 도약합니다. 세 옥타브 가까이 뛰는 셈이죠. 만약 이 차이가 너무 크다고 한 옥타브를 줄여놓으면 어떨까요. 전혀 다른 멜로디가 됩니다.
이 협주곡은 초여름 하늘이 흐리고 빗방울이 떨어질 때 들으면 제격입니다. 아래위로 마구 도약하는 선율을 잔잔한 음의 시로 표현해낸 것은 역시 천재 모차르트의 실력이라고 할 수 있겠죠. 특히 위에 언급한 ‘19도 도약’은 마치 천사의 눈에 고인 눈물이 똑 떨어지듯 아름답습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19도 도약 부분 / 사진=필자 제공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19도 도약 부분]
연주자에 따라서는 이 19도 도약 부분을 연속해서 흐르는 상행 음표들로 채우기도 한다. 모차르트 시대에는 협주곡의 독주부에 연주자의 자의적인 표현 또는 변경이 낭만주의 시대보다 폭넓게 용인되었으니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변경이 귀에 들리는 순간 오디오를 꺼버리곤 한다. 내가 상상한 ‘눈물 똑’을 배신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콘서트장이라면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