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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호의 통섭의 경영학] "이 요리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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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정인호의 통섭의 경영학] "이 요리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요즘 화제의 중심에 선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즌2》를 보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든 장면이 있다. 미슐랭 3스타 셰프이자 심사위원인 안성재는 요리를 입에 넣기 전, 거의 의식처럼 묻는다.
    “이 요리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 앞에서 “맛있는 음식입니다”라는 대답은 통하지 않는다. 어떤 재료를 왜 선택했는지, 먹는 사람이 어떤 식감을 느끼길 바랐는지, 이 요리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계가 필요하다. 아무리 화려한 기술을 사용했더라도 그 의도가 맛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탈락이다. 맛은 기본 조건일 뿐, 진짜 평가는 ‘의도가 구현되었는가’에서 갈린다.

    이 장면이 유독 인상 깊은 이유는 이 질문이 요리 프로그램의 맥락을 넘어 우리의 일과 삶 전반에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우리는 종종 “우리 제품은 성능이 뛰어납니다”, “저는 성실하게 일합니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요리로 치면 “맛있습니다”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차별화도 설득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성능 그 자체가 아니라, 왜 그 성능이 필요한지, 누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진짜 고수는 기술을 설명하기 전에 의도를 먼저 제시한다. 이 제안서를 통해 상대에게 어떤 판단을 유도하고 싶은지, 이 프레젠테이션에서 강조와 생략을 이렇게 배치한 이유는 무엇인지, 이 협상에서 내가 먼저 양보하는 선택이 상대에게 어떤 신호로 작용하길 바라는지까지 계산한다. 의도가 분명한 사람은 말이 흔들리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아도, 변수에 부딪혀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모든 선택이 하나의 방향을 향해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의도가 없는 기술은 과잉되기 쉽고, 설명은 길어지며, 행동은 상황에 따라 갈팡질팡한다.

    안성재가 가장 높게 평가하는 순간 역시 이 지점에서 나온다. 요리사가 설명한 의도가 실제 맛과 정확히 일치할 때다. “고기의 결을 살리고 싶었다”는 말이 씹는 순간 그대로 느껴질 때, “차가움 속에서 단맛의 여운을 남기고 싶었다”는 설명이 마지막 한 입에서 납득될 때 그는 미소를 짓는다. 반대로 말과 결과가 어긋날수록 실망은 커진다. 좋은 재료를 썼는지, 기술이 화려했는지는 그 다음 문제다.

    이 원리는 소통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좋은 의도를 가졌다는 사실이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배려하려 한 말이 상대에게 상처로 남았다면, 그것은 의도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실패다. 협상에서 ‘윈-윈’을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한쪽만 손해를 봤다면, 그 역시 의도와 결과가 정렬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선의의 크기가 아니라 의도와 결과 사이의 간극을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하느냐에 있다.

    현대 사회는 기법과 포장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다. 말하는 법, 설득하는 기술, 브랜딩 전략은 넘쳐난다. 그러나 그럴수록 “왜 이 선택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점점 뒤로 밀린다. 의도 없이 반복되는 회의, 목적 없이 쌓이는 보고서, 방향 없이 소비되는 에너지는 결국 조직과 개인을 동시에 소진시킨다.

    안성재의 질문은 그래서 더욱 본질적이다. 그것은 요리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태도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무엇을 하려 했는가를 먼저 묻는 태도. 결과를 평가하기 전에 설계를 들여다보는 시선이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기술을 넘어 사고로 일하는 단계에 들어선다.

    의도가 분명한 사람은 설명이 명확하고, 선택이 단단하다. 요리든, 비즈니스든 결국 남는 차이는 하나다. 우연히 잘된 결과인가, 의도대로 구현된 성과인가.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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