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아트테크 사기 잇달아
"가치없는 작품 고가판매 수법
고수익 내세우면 사기 의심해야"
‘미술품에 투자하면 매달 수익을 보장한다’며 다수 투자자를 모아 수천억원 규모 사기 범행을 저지른 국내 유명 미술 갤러리 서정아트센터의 대표가 구속됐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확산한 미술품 투자 열풍과 절세 수요를 악용한 ‘아트테크’(미술품 재테크) 사기가 잇따르고 있어 투자자 주의가 요구된다.
◇업계 “피해액 수천억대 달할 듯”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모 서정아트센터 대표(44)를 지난 22일 구속했다고 24일 밝혔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서정아트센터는 김환기, 이우환, 쿠사마 야요이 등 국내외 유명 작가 그림을 전시하며 업계에서 인지도를 쌓은 갤러리다. 이씨는 2010년대 중반부터 ‘소속 작가의 미술작품을 구매해 일정 기간 센터에 맡기면 전시, 광고, 협찬 등을 통해 수익을 내 월 0.8~1%의 수익금을 지급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은 것으로 조사됐다. 계약 기간 종료 후 작품이 팔리지 않으면 갤러리가 재매입해 원금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지난 5월부터 돌연 수익금 지급을 중단했고, 원금도 반환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의 고소가 잇따르자 경찰은 6월 서정아트센터 사무실과 수장고, 이씨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현재까지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는 약 800명, 피해 금액은 1100억원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피해 규모가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정아트센터가 10년 이상 운영됐고, 투자 대상이 미술품인 만큼 1인당 투자 금액이 크기 때문이다. 20억원 이상을 뜯긴 피해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신병을 확보한 경찰은 추가 피해 여부를 수사할 방침이다.
◇2030세대 아트테크 열풍
아트테크를 내세운 사기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갤러리K와 지웅아트갤러리, 아트컨티뉴 등에서 미술품 투자를 가장한 대규모 사기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절세 수단으로 미술품 시장이 주목받으면서 관련 사기도 함께 확산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미술품은 취득세와 보유세가 없고, 양도할 때만 세금이 부과된다. 양도가액(매도가액)이 6000만원 이하면 비과세되고 그 이상이더라도 국내 작가 작품이고 작가가 생존해 있다면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과세 대상이 되는 경우에도 양도가액 1억원까지는 최대 90%를 필요경비로 인정받을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아트테크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도 사기가 늘어난 이유로 꼽힌다. 부동산과 주식시장 호황으로 시중 유동성이 크게 늘어나면서 투자 열풍이 미술시장으로까지 번졌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미술품을 재테크 수단으로 바라보는 인식도 확산했다. 미술품이 주식이나 채권에 비해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점도 대체 투자자산으로서의 매력을 키웠다.
전문가들은 아트테크 사기가 미술품 시장에 대한 대중의 정보 격차를 악용한 전형적인 금융사기라고 지적한다. 이지훈 법무법인 심앤이 변호사는 “고수익을 미끼로 사실상 경제적 가치가 없는 작품을 고가에 판매하는 수법”이라며 “미술품이라는 실물이 있더라도 일정 수익과 원금을 보장한다는 설명이 나오면 사기일 가능성을 먼저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