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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흥정거리 전락한 '주52시간제 예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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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터 아이작슨이 쓴 일론 머스크의 전기를 옮긴 유명 번역가 안진환 씨가 가장 감명받았다는 문장이다. “정말로 중요한 목표가 있는데 그 실현 가능성이 1% 이상이라면,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다는 뜻이고, 따라서 시도할 가치가 있다.” 머스크가 이런 신조 아래 극한의 업무 미션을 발동시키는 게 ‘서지(surge)’다.

    [천자칼럼] 흥정거리 전락한 '주52시간제 예외'
    영어 surge는 평소보다 과도하게 급증한 상태다. 즉, 급격한 몰아치기 작업으로 ‘양질 전환’의 혁신을 일궈낸다는 의미다. 토요일 새벽 1시에 서지를 걸어 미국 각지에서 모여든 직원 500여 명이 열흘간 에어매트리스에서 자면서 임무를 완수한 적도 있다. 공매도 세력에 ‘주당 5000대 생산’ 계획을 공격받았을 땐 24시간 비상 체제로 3개월간 서지 끝에 기적적으로 목표를 달성했다.

    서지는 정보기술(IT)업계에서 종종 있는 고강도 업무의 머스크식 표현이다. 신제품 출시 전 회사에서 한동안 숙식하며 막바지 작업에 매달리는 ‘크런치 모드’다. 게임업계에서 비롯된 말인데, 반도체업계에도 통용된다. 반도체 기업은 차세대 공정 기일이 임박했을 때, 신기술 초기에 오류가 발생할 때, 고객사의 요구로 공정을 재배치할 때 크런치 모드에 돌입한다. 특히 고객 수요 변동이 잦은 파운드리 분야에 필요성이 많다. 엔비디아가 주 7일, 새벽 2시까지 고강도 근무에 익숙하다 보니 파트너인 대만 TSMC의 연구개발(R&D)팀 역시 하루 24시간, 주 7일 시스템으로 가동된다.

    반도체 R&D 부문의 숙원인 ‘주 52시간제 예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는 노동계의 반대로 입법이 막혀왔다. 정부가 이를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조건이 기가 막힌다. 비수도권 지방에 R&D 시설을 마련하면 예외를 두겠다는 것이다. 국가전략산업 육성 방안을 무슨 흥정하듯 접근하고 있다. 지방 발전이라는 명분을 제시하지만, 지역 표심을 자극하려는 정치적 저의도 의심이 든다. 고급 인력의 지방 근무 기피 현실을 감안하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TSMC는 24시간 화재진압의 자세로 임한다는데, 우리는 한가해도 너무 한가하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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