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 일 없다면…오라, 이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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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 천문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 천문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천문 관찰을 통해 천동설을 깨기 전까지, 밤하늘은 권력의 독점물이었다. 고대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이는 황제, 제사장, 철학자 같은 노동에서 해방된 이들이었다. 그리스 자연철학의 시조 탈레스가 우물에 빠지는 것도 모를 만큼 별을 보며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낮의 노동을 감당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왕조 국가에서 하늘을 읽는 행위는 권력의 기초였다. 세종이 장영실을 앞세워 ‘자주적 하늘’을 얻으려 했던 건 당시 명나라가 정해놓은 규율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천문이 과학의 영역으로 자리 잡은 덕분에 이제 하늘은 평범한 이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천문학 덕분에 우리는 별을 통해 지구와 인류의 시간에 관한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게 됐다. 19세기 분광학이 발전하면서 별빛 속에는 온도, 화학 조성, 속도, 연령 등 정량화 가능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가 태양빛에서 흡수선을 발견한 이후 천문학은 관측 기록을 넘어서 물리법칙을 검증하는 천체물리학으로 확장됐다.
현대 천문학자들은 별빛을 통해 그 별이 어떤 원소를 태웠고, 어떤 단계의 진화를 거치고 있으며, 빛이 출발하던 시점에 어떤 상태였는지를 복원한다. 특정 파장의 흡수·방출선은 항성의 온도와 성분을 알려주고, 도플러 편이는 별이 우리에게 가까워지는지 멀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심지어 별빛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지나온 성간물질의 농도와 성질까지 추적할 수 있다. 별이 내보낸 빛은 단순한 광채가 아니라 그 항성과 주변 환경이 남긴 복합적 기록물인 셈이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천문대를 가보라. 철학자 칸트가 ‘별이 빛나는 하늘과 우리 안의 도덕법칙’이라는 구절을 남긴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곳에선 모두가 침묵의 즐거움에 빠진다. 밤의 정령들이 꾸미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무대를 보고 있으면, 우주의 끝 모를 깊이에 압도당하고, 시간의 장엄함에 매료되며, 비로소 사유의 자유에 이르게 된다. 휴대폰과 컴퓨터의 푸른 불빛에서 해방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천문대로 떠나자.
관측소의 돔이 열리자…시드니는 작은 우주가 됐다
호주의 명물 '시드니 천문대'를 가다
어둠 대신 도시를 끌어안은 ‘오아시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밀러스포인트 어퍼포트스트리트에 세워진 시드니 천문대는 1850년대 항만 도시의 시간·기상·천문을 관측하기 위한 거점으로 출발했다. 현재는 공공 천문대와 박물관·교육 기능을 함께 품은 도심의 대표 과학·문화 공간으로 진화 중이다. 도심형 천문대는 ‘최신 연구’에 집중하기보다 ‘최초의 관측 경험’을 선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지난달 30일 시드니에 거주한다는 관람객은 “도시 한가운데에서 전문 망원경으로 달과 행성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주말 밤 데이트 장소로 골랐다”고 말했다.
관측관의 돔이 열리자 직경 16인치 슈미트-카세그레인식 반사망원경이 달과 토성을 차례로 포착했다. 오리온자리의 허리띠를 이루는 세 개 별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가이드는 “도심에선 아주 먼 심우주 천체보다 달과 행성, 성단과 성운처럼 밝은 대상을 관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별자리에 얽힌 옛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호주 원주민은 은하수의 어두운 부분을 호주에만 서식하는 조류인 에뮤의 형상으로 보고, 그 모습이 언제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계절의 흐름과 생활의 시기를 짐작했다고 한다.
이 느슨한 호흡 위에 시드니의 야경이 더해지면, 언덕은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화려해진다. 사위가 온통 어두운 일반 천문대와는 확실히 색다른 경험이다. 특별함을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빛’이다. 천문대는 숙명적으로 빛을 피해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시드니의 빛은 체험을 더 풍성하게 한다. 언덕 아래로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의 야경이 펼쳐지고, 그 위로 별이 반짝이면 방문객들은 야경이 주는 낭만에 빠져든다.
관측이 끝난 뒤 실내로 들어서면 이 언덕이 쌓아온 시간을 전시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1874년 제작된 직경 29㎝ 굴절망원경과 각종 천문 기록, 약 4000년 전 호주 북부 헨버리 운석 충돌 당시의 운석 조각 등은 시드니 천문대가 단순한 관람형 시설이 아니라 도시의 역사와 과학이 겹친 현장임을 보여준다.
연구는 산간으로, 도시 하늘은 도심으로
천문 연구 관측이 산간 등 어둡고 높은 관측지로 이동하는 흐름 속에서 옛 천문대들은 다른 방향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인근에 도시가 들어서면서 교육·체험 중심으로 기능을 바꾸고 있다. 시드니 천문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런 변화가 ‘과학적 역할의 소멸’을 의미하진 않는다. 도시의 빛이 밝아진 만큼 도심형 천문대가 해석해야 할 대상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콤플루텐세 국립대(UCM)에 있는 천문대는 빛 공해의 주요 광원 분포를 식별하고, 밤하늘 밝기와 대기 물질을 측정하는 방향으로 기능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도심형 천문대가 ‘빛 때문에 관측이 어려운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빛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관측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도심형 천문대의 미래는 두 갈래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하나는 시드니처럼 도시 중심에서 별자리를 보는 체험의 거점, 다른 하나는 마드리드 사례처럼 도심 하늘의 데이터를 읽는 관측 거점이다. 별을 보기 위해 멀리 떠나는 시대는 이어지겠지만, 도시에서 별을 만나러 떠나는 밤도 좋지 않을까.
"천문대는 별을 보며 나를 돌아보는 곳"
에드워드 크루프 美 그리피스 천문대 관장
50년 넘게 그리피스 천문대를 지켜온 에드워드 크루프 관장(사진)은 “인류는 고대부터 하늘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이해해 왔다”고 강조했다. 천문 관측은 인간이 우주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패턴을 찾는 존재”라며 “우주는 가장 오래 관찰해 온 무대”라고 설명했다.
이런 감각은 인류가 지녀온 가장 오래된 생존 본능과도 연결된다. 고대인들은 하늘의 패턴을 읽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 등 여러 문명은 별과 태양, 달의 움직임을 생존 지침으로 삼았다.
크루프 관장은 고대 문명과 천문학의 관계를 연구하는 고대천문학(archaeoastronomy) 분야를 대표하는 학자다. 이집트·멕시코·중국·페루·미국 남서부 등 전 세계 2000여 곳의 고대 천문 유적을 답사해 왔다. 그는 이집트 사원, 스톤헨지, 첨성대 등을 살펴보며 “천문학이 종교·정치·예술 등과 모두 연결돼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천문학을 깊게 들여다보면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삶의 방식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천문대를 “사람들이 우주 속 자신을 다시 생각하는 공간”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피스 천문대는 LA에서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PC)와 인터넷을 도입한 공공기관이다. 최초로 공식 웹사이트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모든 선택은 천문대를 대중이 우주를 가장 생생하게 체감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도시의 불빛 아래에서도 밤하늘은 여전히 인간의 감각을 깨우고 우리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다시 묻게 한다. 크루프 관장은 천문대를 “그런 질문을 기억하게 하는 장소”라며 “사람들이 우주를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에서 가장 메마른 땅…'별캉스' 즐기기엔 안星맞춤
우주매니아들의 성지…세계 4대 천문대
스페인 카나리아제도 테네리페섬 중심부에는 해발 2400m 높이의 테이데산이 있다. 이곳은 화산섬의 중심이자, 남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천문 관측 거점 중 하나인 테이데 천문대의 터전이다. 맑은 하늘, 안정된 대기, 바다 위로 솟은 지형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기후 덕분에 테네리페의 밤하늘은 별빛의 세밀한 결을 드러내기에 최적의 환경으로 평가받는다.
천문대가 위치한 라스 카니아다스 고원은 낮에는 분화구 지형이 주는 황량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붉은색 현무암과 희미한 용암의 흔적이 섞인 사막 같은 지형 위로 하얀 돔 형태의 관측소들이 점점이 펼쳐져 있다. 이곳 하늘은 빛공해가 거의 없어 맨눈으로도 은하수의 구조를 담을 수 있다. 관측소 내부에서는 유럽 각국의 연구진이 행성과 태양 활동을 관측한다. 테이데 천문대는 낮엔 태양, 밤에는 별 관측이 가능해 유럽우주국(ESA)의 핵심 태양물리 연구 기지가 됐다. 태양의 흑점과 플라스마 변화를 기록하는 망원경이 여럿 설치돼 있다. 과학적 장비와 자연의 하늘이 하나의 장면으로 공존하는 광경을 관람할 수 있다.
2. 세계 첫 다크 스카이 보호구역…뉴질랜드 테카포 '마운트 존'
뉴질랜드 남섬의 중심부, 마운트 쿡에 인접한 작은 마을 테카포에는 전 세계 천문 애호가들이 찾는 장소가 있다. 바로 마운트 존 천문대다. 해발 1000m의 낮은 고도지만 주변에 빛공해가 거의 없고 공기가 유난히 맑아 별빛의 명암이 구체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 지역은 국제천문연맹이 지정한 ‘다크 스카이 리저브’로, 지구상에서도 가장 어두운 하늘을 보존하는 곳 중 하나다.
낮의 마운트 존은 자연과 과학이 함께 그려낸 조용한 풍경을 보여준다. 관측소들은 하얀 원형 돔 형태로 능선에 자리하며, 남극 바람에 닳은 바위와 어우러져 묘한 균형을 이룬다. 해가 질수록 호수 표면은 거울처럼 변하고 하늘에는 별의 흔적이 떠오른다. 그리고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는 순간, 이곳은 전혀 다른 세계로 바뀐다. 수천 개의 별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다. 천문대에서는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다. 남십자성, 마젤란은하, 그리고 은하수를 따라 이어지는 별무리는 도시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연구자들은 이곳에서 별의 형성 과정과 성간 물질의 움직임을 분석한다.
3. 구름 위의 천문대…미국 하와이 '마우나케아'
하와이 빅아일랜드의 마우나케아 천문대는 해발 4200m 지점에 자리한 관측 시설이다. 방문객이 이곳으로 오르는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연과 우주의 경계를 경험하는 여정에 가깝다. 트럭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고도를 높여가다 보면 바다와 구름이 뒤섞인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지며 점차 현실감에서 멀어진다.
마우나케아 정상은 구름 위로 솟은 고지대다. 공기가 희박하고 빛공해가 적어 천문 관측에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다. 낮엔 화산지형의 거친 바람이 불고, 곳곳에 자리 잡은 커다란 망원경 돔이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인다. 해가 지면 하늘은 어둠으로 잠기지만, 곧 별빛이 그 자리를 채운다. 밤하늘 은하수는 눈으로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하고, 망원경 없이도 수많은 별무리가 확인된다. 마우나케아 천문대는 전 세계 천문학자들의 연구 장소로도 주목받는 곳이다. 이들은 한데 모여 별의 형성과 소멸, 은하의 움직임 등을 관측한다.
4. 지구에서 가장 깨끗한 하늘…칠레 아타카마 '알마'
해발 5000m에 가까운 안데스 고원의 끝자락에는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으로 알려진 아타카마 사막이 있다. 낮에는 태양열이 메마른 대지 위를 강하게 내리쬐고, 밤이 되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러나 이 극단적인 환경이야말로 천문학자에게는 이상적인 조건이다. 공기가 건조하고 대기의 흐름이 안정돼 있으며, 인공조명의 영향이 거의 없다. 그 결과 아타카마는 ‘별이 가장 선명히 보이는 땅’으로 불린다.
이 사막 한가운데 있는 여러 천문대 중에서도 대표적인 곳은 알마(ALMA) 전파망원경이다. 60여 대의 거대한 접시형 안테나가 서로 다른 각도로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모습은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밤이 깊어지면 이 기계적 구조물들이 느릿하게 움직이며 우주의 미세한 신호를 포착한다. 천문대 근처에서는 관측 투어도 운영된다. 망원경을 통해 행성의 빛을 살피고, 천문대 연구진으로부터 우주의 구조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다.
韓 천체 관측 최전선 보현산 천문대…성운까지 볼 수 있는 국립과천과학관
국내에서 가볼만한 천문 명소
일반인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도 잘 갖춰져 있어 지인들과 별을 보러 가기 좋은 곳이다. 지난 10월에 열린 ‘제22회 영천 보현산별빛축제’까지 더해지며 연구의 현장이자 시민이 별빛을 누리는 생활 속 천문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천문대가 있는 보현산 일대는 ‘하늘을 오래 누린다’는 뜻을 품은 천수누림길도 품고 있다. 보현산천문대에서 시루봉까지 걷는 이 길은 가을이면 억새와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 천천히 걸으며 하늘과 산을 함께 즐기기 좋다.
수도권에서는 국립과천과학관이 대표적인 천문 명소다. 2008년 개관 당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시설로는 이례적으로 1m 반사망원경을 구비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전국에 1m급 공개 망원경이 10여 대로 늘었다. 이 정도 스펙의 망원경이면 낮에는 강한 태양광 아래에서도 밝은 별을 확인할 수 있고, 밤에는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희미한 성운, 성단까지 관측할 수 있다. 돔과 함께 거대한 망원경이 천체를 추적하며 움직이는 모습은 기계가 하늘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인상을 준다.
보조관측실에는 여러 형태의 광학망원경이 단단한 기둥 위에 배치돼 있다. 굴절·반사·카세그레인 등 광학 구조가 서로 다른 장비를 동시에 볼 수 있어 학생·일반 방문객이 망원경의 원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좋다. 낮에는 태양 필터와 태양 전용 장비를 이용해 흑점, 채층, 플라스마 분출 등 태양 활동을 관찰한다. 필터 종류에 따라 태양 표면과 대기의 구조가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교육적 설명과 함께 경험하면 효과가 크다. 밤에는 행성, 이중성, 산개성단 등 밝기·색·거리 다양성을 가진 천체들을 순차적으로 관측한다. 작은 망원경이라도 좋은 조건이 뒷받침해 주면 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천체 구조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천문대 뒤편에는 직경 7.5m 전파망원경(사진)이 설치돼 있다. 대중에게 공개된 전파 관측 장비로는 국내에서 사실상 유일하다. 평소에는 하늘을 향해 대기하고 있으며, 관측 대상을 입력하면 안테나가 그 방향으로 천천히 회전한다. 이 장비는 태양 전파, 우리은하의 중성수소선(21㎝), 각종 천체 전파원을 탐지할 수 있어 광학 관측에서 얻기 어려운 정보를 제공한다.
이영애 기자/시드니=최영총 기자/최지희 기자 0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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