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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로 삶을 구한 사나이 토마스 크바스토프, 인간 승리의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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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 강성곤의 아리아 아모레

    '아가씨든 아내든'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中에서
    클래식 쪽에서 장애를 극복한 세계적인 가수라면 우선 시각장애인 안드레아 보첼리(65)를 빼놓을 수 없다. 1994년 산레모 음악제에서 명곡 ‘Il mare calmo della sera(저녁 무렵 잔잔한 바다)’를 크로스오버 창법으로 불러 우승한 게 커리어의 시작. 원래 법학도였으나 명가수 프랑코 코렐리를 사사했고 <라 트라비아타>, <라 보엠>, <토스카> 무대에도 섰으며 오페라 아리아 앨범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극적인 장애 극복 인물은 따로 있다. 독일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Thomas Quasthoff, 1959~ ). 어머니가 임신 중 수면제인 문제 약물 콘터간(contergan)을 복용하는 바람에 기형으로 태어났다. 키 1m 34cm. 어깨에 팔이 움츠러들어 붙어 있고, 다리도 짧다. 게다가 오른손은 손가락 4개, 왼쪽은 3개로 대단히 자유롭지 못하다.
    독일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 (Lions-Benefizkonzert 공연 모습) / 사진. © Thorsten Krienke (flickr.com/photos/krienke/40420710655)
    독일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 (Lions-Benefizkonzert 공연 모습) / 사진. © Thorsten Krienke (flickr.com/photos/krienke/40420710655)
    아버지는 그러나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간파하고 개인레슨을 시킨다. 13세 때 만난 평생 스승 샤를로테 레만(Charlotte Lehmann, 1938~ ). 빼어난 소프라노이자 교사였던 레만은 음악과 발성 훈련을 놀이와 모험처럼 접근하며 크바스토프의 예술적 감성을 무려 17년간을 북돋아 주었다. 팔과 어깨를 사용하지 못하기에 호흡의 중심을 횡격막과 복부로 옮기고 끝없는 반복훈련을 했다. 또한 신체적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목소리와 얼굴로 감정 표현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지도했다. 크바스토프는 부푼 꿈을 안고 고향 힐데스하임과 가까운 하노버 음대에 입학을 타진했으나 거절당하자 좌절한다. 노래를 포기했으되 공부 욕심이 남달랐다.

    법학 6년, 마케팅 역시 6년을 공부했다. 그 틈틈이 카바레(풍자 무대)에도 서면서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콜 총리의 성대모사를 완벽히 소화해 이름을 날렸고, 라디오 아나운서로도 활동했다. 부인 클라우디아도 중부독일방송국 MDR의 아나운서 출신.

    28세가 되어서야 못다 한 꿈을 이루려 다시 음악으로 돌아왔다. 1년간의 준비 끝에 마침내 1988년 뮌헨에서 열린 ARD국제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린다. 이후 행보는 일사천리였다. 오페라 무대로 활동 반경을 넓히며 성가를 높이더니, 39세 때 슈베르트와 말러 리트(Lied) 레퍼토리로 미국 카네기홀 무대에 섰다. 2010년부터는 소울⸱리듬앤블루스⸱재즈까지 섭렵하고 있다. 그는 2000⸱2004⸱2006⸱2008년, 무려 4회의 미국 그래미상 수상자다. 또한 2005년에는 독일 국민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연방대십자가훈장을 받았다.
    독일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 / 사진. © Elke Wetzig/CC-BY-SA, 출처. Wikimedia Commons
    독일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 / 사진. © Elke Wetzig/CC-BY-SA, 출처. Wikimedia Commons
    크바스토프는 풍부한 저음, 따뜻한 중저음, 안정적인 고음을 구사하는 보기 드문 바리톤이다. 특유의 부드러운 울림에 명료한 가사 전달, 세밀한 톤 조절 능력까지 두루 갖추었다. 무엇보다 인간 승리를 보여주는 숭고한 아우라는 늘 감동을 준다. 그러나 그도 벌써 어언 66세. 후두염 때문에 올해부터 클래식 공연은 은퇴를 선언하고 현재는 재즈 음반으로 세계투어 중이다. 2019년 봄 우리나라에도 다녀갔다. 모두 16장의 음반을 냈고, 현재 베를린 음대 교수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모차르트는 그의 장기 중 하나다. 오페라 <마술피리> 2막에서 파파게노가 자신도 사랑할 짝을 찾고 싶다는 심경을 표현한 아리아 '아가씨든 아내든(Ein Mädchen oder Weibchen)'. 역시 크바스토프답게 잘 부른다.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 -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파파게노의 아리아 ‘아가씨든 아내든’]


    “이 파파게노는 아가씨나 아내감을 원한답니다. 그런 예쁜 비둘기 같은 여인은 내게 더없는 행복이에요. 그러고 나면 먹고 마시는 모든 게 맛있을 테죠. 그럼 나는 제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답니다. 현자(賢者)로서의 삶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마치 낙원에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 파파게노를 마음에 들어 하는 여인이 그렇게도 없나요? 누군가가 나를 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해준다면 좋으련만. 안 그러면 원통해서 죽을지도 몰라요. 아무도 내게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지옥 불이 나를 삼킬 겁니다. 그러나 만약에 한 여인이 내 입술에 키스해준다면, 나는 금세 기력을 되찾을 거예요.”

    진정한 인간 승리의 표상, 토마스 크바스토프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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