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의 재개발 구역인 세운 4구역에 최고 142m의 고층 빌딩을 짓겠다는 서울시 결정을 놓고 극한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세운 4구역에 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170m가량 떨어진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宗廟) 경관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니,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막겠다는 게 중앙정부와 여당 방침이다. 반면 오세훈 시장은 “재개발하면 종묘의 가치가 오히려 높아진다”고 반박한다. 문제가 된 서울시의 재개발 계획은 어떤 것이고 취지는 무엇인지, 국가유산청과 고고학계는 왜 반대하는지 정리했다.
(1) 세운상가 재개발 왜 문제인가
종묘 안에서 남쪽 세운 4구역 방향으로 도심을 바라봤을 때의 전망. 뒤쪽의 건물 이미지는 서울시 계획대로 고층 건물 개발이 이뤄질 경우를 상상해 그린 것이다. /그래픽=김하경 기자
1967년 건립된 세운상가는 1970년대 전기·전자산업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며 서울의 명물이 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상가는 흉물로 변했다. 재개발 사업이 추진됐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진행이 더뎠다. 그러던 중 2009년 문화유산심의위원회가 결정적인 제동을 걸었다. “종묘 맞은편에 고층 건물을 지으면 종묘에서 바라보는 경관을 해치니 건물 높이를 낮추라”고 권고했다. 도심 재개발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고층 건물을 허가하는 대신 여기에서 나오는 추가 수익으로 개발, 이주, 공원 조성 등의 비용을 충당하려는 게 서울시 계획이었다. 하지만 고층 건물 건설이 막혀 사업성이 떨어졌고, 개발은 멈춰 섰다. 오 시장에 이어 취임한 박원순 전 시장은 기존 계획을 아예 백지화했다. 또다시 10여 년이 흘렀다.
(2) 어떻게 재개발하려 하나
2021년 서울시장에 복귀한 오 시장이 다시 세운상가 재개발에 나섰다. 오 시장은 세운상가와 인근 상가를 철거하고 공원을 조성하는 대신 주변 지역 빌딩을 높고 넓게 올린다는 10여년 전 계획을 다시 들고나왔다. 서울시의회가 조례 개정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자 국가유산청이 또다시 제동을 걸었다. “조례 개정 과정에서 협의가 없었다”며 대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6일 서울시 손을 들어줬다. 서울시 계획에 따르면 종묘 인근에는 최고 높이 142m에 이르는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 종묘 쪽은 기존 55m에서 98.7m로, 청계천 쪽은 71.9m에서 141.9m로 제한 고도를 풀었다. 이로써 세운 4구역에는 최대 35층 높이의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됐다. 최종 목표는 세운상가를 허문 자리에 종묘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공원(녹지 축)을 만들고, 주변에 30~40층짜리 최신식 마천루를 세워 글로벌 기업 등을 유치하는 것이다.
(3) 오세훈 시장, 왜 고층 추진하나
“문화유산을 훼손한다”는 비판은 정치인에게 치명적이다. 이런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오 시장이 마천루 건설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뭘까.
먼저 사업성 문제다. 문화유산심의위원회가 제시한 55~72m 높이 건물로는 공사 비용을 대기 어렵다. 쾌적한 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초고층 빌딩을 세워야 여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공원을 만드는 돈을 대고 공간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문화유산심의위원회 권고를 따르면 낮은 건물이 빽빽하게 몰린 형태로 재개발을 해야 하는데, 이는 난개발로 이어지기 쉽다는 게 오 시장 생각이다. 그는 “세운상가 일대 붕괴 직전의 판자 지붕 건물들을 한 번이라도 내려다보면 지금 상황이 종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4) 법적으로 따지면 어떻게 되나
법적으로 따지면 개발 계획에 문제는 없다. 개발 구역이 문화유산보호법에서 규정한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반경 100m 이내) 안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13일 종묘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하는 등 법적·절차적 저항을 시도하고 있지만, 소급입법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아 법적 다툼이 벌어지면 서울시의 승산이 높다는 게 법조계 해석이다.
개발이 20년 가까이 막혀 막대한 피해를 본 주민들의 원성도 무시할 수 없다. 땅 주인들은 재개발 지연으로 인한 빚만 총 725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경관 훼손 문제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남쪽에 고층 빌딩이 들어서더라도 정전(正殿)과 창경궁을 바라보는 북쪽의 핵심 전망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건축 거장 프랭크 개리 등 많은 이들이 칭송한 ‘수평적 건축’의 아름다움은 그대로라는 얘기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종묘 정전에서 창경궁을 바라보는 북측 방향 전망은 보호해야 하지만, 이미 여러 건물이 올라서 있는 남측에서는 전통과 도심의 조화를 이루면 된다”고 말했다.
(5) 국가유산청은 왜 반발하나
한국고고학회 등 학계와 국가유산청은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종묘에서 시내를 바라보는 남쪽 전망의 중요성도 크고, 빌딩이 들어서면 종묘의 핵심 매력인 ‘고요한 공간 질서’가 깨질 수 있다는 게 반론의 요지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문화유산으로서 종묘의 본질은 수백 년 된 사당이자 제사 의식 수행 공간”이라며 “공간의 문법으로 보면 이곳의 주인은 모셔져 있는 왕실 위패인데, 여기서 남쪽을 바라보는 시선과 전망의 중요성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화유산의 전망을 평가할 때는 360도가 모두 중요하다는 얘기다.
(6) 유네스코의 입장은 무엇인가
고층 빌딩 건립은 유네스코와의 약속을 깨는 일이기도 하다. 1995년 세계유산 등재 당시 정부는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에서의 고층 건물 인허가는 없다”고 약속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고층 건물을 지으려면 이로 인한 문화유산 가치 훼손 정도를 측정하는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았어야 했는데 서울시가 이 과정을 건너뛰었다”고 강조했다.
결국 쟁점은 ‘고층 빌딩을 지어서 얻는 이익이 종묘 전망의 일부 훼손을 감안할 정도로 큰가’다. 빌딩 입주 수요와 주변 교통에 끼치는 영향은 어떤지, 건물이 들어서면 종묘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정확히 어떻게 바뀌는지 등을 잘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7) 해외에선 어떻게 하나
문화유산 보존과 도시 개발 간의 갈등은 세계 모든 나라의 고민거리다. 사안별로 대응은 천차만별이다. 프랑스 파리는 37m 이상의 건물 신축을 원칙적으로 금지(2023년)하는 등 도심 전체 경관을 강력하게 통제한다.
개발 논리가 앞선 사례도 많다. 영국 런던은 2014년 세계유산인 런던타워에서 약 600m 떨어진 거리에 레덴홀 빌딩(225m)과 세인트 메리엑스(180m) 등 고층 빌딩을 두 개 지었다. 유네스코가 경관 훼손을 강력 경고했으나 건물 설계를 일부 변경하는 선에서 세계유산 지위를 유지했다.
등재 취소가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국가유산청도 한국경제신문에 “서울시 계획대로 개발이 강행된다고 하더라도 세계유산 지위가 박탈될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유네스코 유산 해제' 해외 사례 獨 드레스덴 엘베 계곡, 교통체증에 다리 건설…취소 후 관광객 40%↑
세운상가 고층 재개발 반대론자들이 거론하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이 해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지정은 크나큰 국가적 영광이고, 지정 해제는 나라 망신일까. 2004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가 2009년 4차선 교량인 ‘발트슐뢰셴 다리’를 건설했다는 이유로 취소된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의 사례가 흥미롭다.
도심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이 계곡에 다리를 건설하는 것은 주민들의 숙원이었다. 이들은 2005년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세계유산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67.9%가 찬성표를 던졌다. 등재 취소 직후 여론조사에서도 주민 57%는 “별 상관없다”고 답했다.
2013년 교량이 개통되자 다른 주요 교량의 교통량은 전년 대비 15~40% 감소했고, 도심의 체감 교통체증도 많이 풀렸다. 등재 취소 이후 5년간(2009~2014년) 드레스덴 관광객은 오히려 등재 기간(2004~2009년) 대비 40% 증가했다. 세계유산 등재와 도시의 평판, 관광 수익은 사실상 무관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