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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떼 칼럼] 건물은 넘치고 건축은 부재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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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 건축은 문화 수준 가늠 지표
    불편함 감수해야 좋은 건축 탄생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아르떼 칼럼] 건물은 넘치고 건축은 부재한 시대
    일본 오사카의 ‘스미요시 주택’(1976)은 안도 다다오의 초기작이다. 독학으로 건축을 익힌 그가 모처럼의 의뢰에 솜씨를 부릴 법했지만 그는 기대를 저버린다. 정면은 무심한 콘크리트 벽이고, 내부는 더 심하다. 좁은 집을 나눠 식당과 화장실을 가려면 비를 맞아야 한다. 프라이버시도 없다. “상은 건축가가 아니라 거주자에게 주어야 한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 ‘불친절한 집’은 일본건축학회상을 받았고, 케네스 프램튼의 ‘비판적 지역주의’를 구현한 건축가로 소개되며 프리츠커상을 받는 초석이 된다. 왜 주목받았을까? 바로 ‘집의 본질’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 집은 하늘을 집안에 머금고, 집은 자연과 관계 맺어야 함을 보여준다. 식구끼리 마주 보고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며, 파사드를 통해 시끄러운 도시로부터 집 내부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집의 본질’을 깨닫게 이끄는 소수의 건물을 ‘건물’(building)과 구별해 ‘건축’(architecture)이라고 칭한다. 스미요시 주택처럼 건축은 때로 당혹스럽게 한다. 그리고 건축은 불편함을 무릅쓰고 건축가의 실험에 동참한 ‘훌륭한 건축주’에 의해 탄생한다.

    작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야마모토 리켄의 ‘판교하우징’도 마찬가지다. 한 가구가 3개 층을 쓰고, 거실은 지하에, 1층은 유리방 현관만 뒀다. 발주자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집요한 설계 변경 요구에 그는 꿈쩍도 안 했고, 결국 94가구가 미분양됐다. 입주자들은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그런데 10년 만에 반전이 일어났다. 주민들이 건축가에게 감사 파티를 연 것이다. 닫힌 집에 익숙한 자신들이 처음엔 유리 현관을 거부했으나 “살아보니” 이웃이 만들어지는 장치였다는 것이다. 이 역시 불편한 집이 집의 본질을 알게 한 사례다. 이런 의미에서 건축은 공학이나 예술이기에 앞서 인문학이다. ‘인문학으로서의 건축’ 반대편에 ‘건설로서의 건축’이 있다. 여기서는 ‘욕망’이 목적어다. 사용자의 욕망과 현시욕을 충족시키는 건물이 좋은 대접을 받는다. 문제는 이런 건물이 건축인 척하며 ‘건축’을 구축하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의 공공 건축이다. 실험적인 건축은 채택되기 어렵고, 설사 되더라도 살아남지 못한다.

    건축은 건축주의 수준을 드러내며, 공공 건축은 그 나라의 문화적 수준의 지표다. 1989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그랑프로제’ 사업의 하나로 루브르박물관 새 출입구 설계를 이오밍 페이에게 맡겼다. 고전적 건물 앞의 유리 피라미드 계획안에 여론이 들끓었다. 그럼에도 미테랑 대통령은 건축가와 설계를 끝까지 지켜주었다. 페이의 안은 오래된 기하학(피라미드)과 미래지향적 재료(유리)의 결합이었다. 미테랑 대통령처럼 건축의 본질과 그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건축주가 있을 때 뛰어난 공공 건축이 나타난다.

    건축은 공동체의 가치를 표상하는 텍스트다. 이 텍스트를 독해하는 작업이 건축 비평이다. 우리 건축의 품격 없음은 건축 비평의 부재와 관련이 깊다. ‘핫한’ 건물 소개는 넘치나 인문학적 독해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건물’이 ‘건축’을 몰아내는 기제로 작용한다. 대중은 ‘튀는 건물’을 원하고, 공공 발주자도 실용적이고 저차원적인 안을 고른다. 건축가들 또한 실험을 자발적으로 포기한다. 일본과 한국의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10 대 0인 이유다.

    K문화처럼 우리 건축도 자랑스러워질 수 있을까? 1990년대 우수 인재들이 이제 젊은 건축가가 돼 일하고 있다. 친절한 ‘건물’ 대신 이들에게 불편한 ‘건축’을 허하는 도량 넓은 건축주들이 도착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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