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서방 제재에도 끄떡없던 러시아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2023~2024년 연 4%대에 달하던 경제성장률이 올해와 내년 0%대로 주저앉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쟁 특수’에 기대오던 경제가 한계에 직면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13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최대 시멘트 제조업체 쳄로스는 연말까지 주 4일 근무를 실시할 방침이다. 건설 경기 침체 등으로 수익성이 나빠지자 비용 감축에 들어간 것이다. 로이터통신이 러시아의 광업·운송 부문 6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이들 업체는 고용을 유지하면서 임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당 근로시간 단축에 나섰다. 지난 8월 러시아의 미지급 임금은 16억4000만루블(약 287억원)로 1년 전 동기보다 3.3배 증가했다.
러시아 경제는 최근 둔화 조짐이 뚜렷하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러시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에서 0.9%로 하향 조정했다. 특히 민간 부문 침체가 두드러진다. 러시아 싱크탱크 CMASF는 군사 관련 분야를 제외한 부문이 연초 이후 5.4% 위축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대표 주가지수인 MOEX지수는 2588.56으로 최근 1년간 약 5.5% 하락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서방 제재와 외국 기업 철수 등으로 마이너스 성장률(-1.4%)을 기록했지만 이후 원자재 가격 상승, 중국과 아랍에미리트(UAE) 등의 지원으로 충격이 상당 부분 상쇄됐다. 이들 국가로 수출한 것이 제재 회피 통로가 됐기 때문이다. 2023~2024년에는 경제가 전시 체제로 전환돼 오히려 성장률이 4%대로 높아졌다. 전쟁 수행을 위한 군비 지출 확대와 대출 증가로 투자, 건설 등이 늘면서 국내총생산(GDP)도 증가했다.
하지만 고금리로 인한 투자 위축으로 올해 초부터 경기 침체 신호가 뚜렷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러시아 재정의 핵심인 에너지 부문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 최대 석탄 매장지 중 하나인 시베리아 쿠즈바스 탄전에서는 지난달 151개 기업 중 18곳이 문을 닫았다. 러시아 정부는 석탄 수출 감소로 관련 30개 기업이 파산 위험에 처해 있다고 보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과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습으로 정유시설이 타격받은 점도 에너지산업에 영향을 미쳤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1~5월 러시아의 평균 원유 수출 가격은 배럴당 약 59달러로 러시아 재무부가 가정한 배럴당 69.7달러를 크게 밑돌았다.
러시아 정부는 급기야 증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부가가치세를 20%에서 22%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쟁 초기에는 석유, 가스 잉여 수입으로 전쟁 비용을 충당했다”며 “이제 다른 재원이 없기 때문에 모든 국민과 기업이 전쟁 부담을 나눠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