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주에 벼락 치자 과거로 간 사도세자…파격의 뮤지컬 '쉐도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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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쉐도우' 리뷰
역사적 사료에 타임슬립 상상력 더해
'전통+현대'의 퓨전…시·청각적 쾌감
부자의 비극→오해의 해소 결말로 재구성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의 탄생' 호평
역사적 사료에 타임슬립 상상력 더해
'전통+현대'의 퓨전…시·청각적 쾌감
부자의 비극→오해의 해소 결말로 재구성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의 탄생' 호평
사도세자는 귀신을 부린다는 도교 비서 '옥추경'을 밤마다 읽으며 괴이한 주문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내 혜경궁 홍씨의 회고록 '한중록'에서 그가 정신병적 증상을 보였다는 묘사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옥추경에서 출발했다.
뒤주에 갇힌 첫날 밤, 사도세자가 옥추경에 피로 이름을 새겨 뒤주에 붙이자 '번쩍!' 하고 벼락이 내리쳤다. 벼락신을 부리길 갈망하던 오랜 염원이 이루어진 것일까. 이내 뒤주가 요동치더니, 웬걸. 눈을 뜨니 51년 전의 과거란다.
뒤주 안에서의 8일. 오로지 사도세자만이 기억하는 어둠 속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뮤지컬 '쉐도우(SHADOW)'는 임오화변의 역사적 사실에 타임슬립 소재를 더해 상상력을 무한대로 확장했다.
51년 전으로 돌아간 사도세자는 열여덟 살의 소년을 마주한다. 뒤주에 갇힌 자신의 신세와 비교하면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이 소년은 남부러운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천한 출신에 형을 독살했다는 의심까지 받는 어쩐지 고달픈 삶. 그런 소년에게 미래에서 온 '벼락의 신' 사도세자는 살아갈 용기를 주는 사람이었고,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에게 소년과의 만남은 삶의 숨통을 트여주는 시간이었다. 지치고 힘든 마음을 나누며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전통과 현대의 조합은 시·청각적으로 완벽한 신선함을 준다. 나무 뒤주는 철제 구조물로 구현됐으며, 무대 전환이 없는 닫힌 공간임에도 화려하고 날카로운 조명 효과 덕에 단조로움은 찾아볼 수 없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서사는 강렬한 록 음악으로 풀어낸다. 드럼·피아노·베이스·기타의 거친 사운드에 짜릿하게 빛을 내는 LED 패널, 그 안에서 조선의 부자는 "싱 위드 미(같이 노래하자)"라며 영어로 호응을 유도한다. 관객들은 검지와 엄지, 새끼손가락을 펼치고 나머지 손가락은 접는 록 공연의 시그니처 제스처를 함께하며 호응한다. 작품의 백미는 어린 영조와 사도세자가 "노모어 리빙 인 더 쉐도우(더 이상 그늘 안에 살지 마)"라고 격렬하게 외치는 장면이다.
과감함과 정교함 사이 줄타기를 잘한 덕분에 역사적 사료와 현대적인 상상력의 선을 부담스럽지 않고 유연하게 오갈 수 있다.
서유기·수호지·삼국지 등 소설 삽화집의 서문을 직접 쓸 정도로 소설에 조예가 깊고, 성경직해·칠극 같은 천주교 서적과 금병매 등 연정소설까지 섭렵했던 사도세자를 작품 초반 예술가형 천재로 나타냈다. 또 곤룡포 대신 삼베옷을 즐겨 입고 다녔던 그의 면모도 무대 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통성을 지니지 못했던 영조, 아버지의 사랑을 원했던 사도세자의 내면까지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역사적 사실에 기인해 보편적인 흥미를 자극했다.
비극의 결말은 달라지지 않지만,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 '오해의 해소'를 삽입했다. 오랜 시간 둘을 가로막고 있던 오해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비극 아닌 비극으로 새로운 마침표를 찍는다. 해묵은 감정은 어느덧 해방감 넘치는 록 사운드와 함께 날아간다.
오랜만의 참신하고 통쾌한 뮤지컬이다. 다소 이질감 있는 결합에 어리둥절한 감정이 드는 건 극 초반 아주 잠깐이다. 특히 각 넘버가 특색 있게 귀에 꽂히는데, 어느샌가 '웰메이드 넘버'들을 옥추경의 주문처럼 따라 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다.
'쉐도우'는 오는 11월 2일까지 서울 강남구 백암아트홀에서 공연한다. 사도 역은 진호·신은총·조용휘가 연기하며, 영조 역은 한지상·박민성·김찬호가 맡는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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