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전지현이나 강동원 때문이 아니다. 디즈니 플러스의 새 드라마 <북극성>이 초특급 화제를 모으는 것은 순전히 정서경 때문이다. 정서경은 감독 박찬욱의 전업 작가이자 그의 얼터 에고이다. 이번 <북극성>의 작가는 그런 정서경이고, 정서경은 원래 드라마 대본을 잘 안 쓰는 인물이다. 이번은 <작은 아씨들> 이후 두 번째이다. <작은 아씨들>을 연출했던 김희원 감독이 <눈물의 여왕>으로 바짝 스타 감독이 됐고 이번 정서경과도 같이 했다. 공동감독은 허명행이고 그는 스턴트 출신 액션 감독이다. 영화 <범죄도시>로 성장했다. 이쯤 되면 드림팀이다. 이 드라마는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전조건을 지니고 있다.
정서경은 박찬욱에게 훈련되고 단련된 측면이 있다. 그녀는 박찬욱과 여러 작품을 했고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가 쓰지는 않았지만, 박찬욱의 최고 걸작인 <리틀 드러머 걸>이나 <동조자>를 봤을 것이다. 같이 검토도 했을 것이다. 그녀의 사부(師父)가 존 르 카레를 세계에서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이다. 스파이의 스파이, 제5열의 5열처럼 꼬일 대로 꼬인 첩보와 스릴러의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작가임을 흠모했을 가능성이 크다. 드라마 <북극성>은 정서경이 그런 박찬욱의 최대 장점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북극성>은 남한의 유력 대통령 후보가 북한의 간첩으로 오인당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흔하디흔한 남북 대결을 소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 분단을 이용하고 악용하려는 무수한 정치 세력들, 거기에 남한과 미국의 모든 정보기관까지 동원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얘기이다. 스파이의 스파이, 이중 스파이. 제5열의 5열. 이중간첩의 이야기. 내가 속이는 것을 상대가 알고 있고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내가 알고 있고 다시 그가 그걸 알고 있고, 있고, 있고 식의 얘기이다.
드라마는 중간중간 핵잠수함의 실루엣을 보여준다. 핵탄두 3천 개를 탑재할 정도의 매머드급 잠수함으로 극 중 미국 국무부는 이를 북한이 개발했다고 흥분한다. 미국의 아놀드 하우저 대통령은 강경 보수주의자로 참모들이 건의한 북한 동시 정밀 타격 작전을 승인할 참이다. 미국 국무부 차관보로 장준익 후보와 조지타운대를 다녔던(미국의 조지타운 대학은 정치학과, 군사학과로 유명하다) 앤더슨 밀러(존 조)는 이 사실을 친구 장준익에게 알리고 국가 기밀 유출 혐의로 FBI의 추적을 받는다. 이제 세력은 둘로 나뉜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자, 그리고 결사코 그 전쟁을 막으려는 자. 3부까지는 전쟁을 막으려는 자들이 수세에 몰리는 이야기이다. 근데 핵잠수함은 진짜 북한 것일까. 그리고 장준익이 정말 간첩이었던 것은 아닐까. 마치 <노 웨이 아웃>의 케빈 코스트너처럼.
서문주 역시 세계 평화까지는 몰라도 죽은 남편을 위해서,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막겠다며, 투지를 내세운다. 백산호와 서문주의 극 중 행동 동기는 그렇게 점층법적으로 일치해 나간다. 백산호는 폭탄 테러 위기에서 서문주를 구하는데 둘은 압력식 폭탄 의자를 바꿔 앉으며 서로의 몸을 부딪친다. 둘의 신파성 러브스토리가 예견되는 대목이고 그건 넷플릭스 영국 드라마 <보디가드>(2018)를 연상케 한다. 보디가드는 자신의 경호 대상과 사랑에 빠진다. 만약 강동원과 전지현을 러브라인으로 엮어내지 않는다면 대중들, 시청자들로부터 ‘낭비’라는 핀잔을 받을 것이다. 둘 사이는 나머지 6부에서 보다 가까워질 것이다.
1, 2부가 시작될 때 나오는 문학적 내레이션이 돋보인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남자였다. 꿈속에서 나는 여자였다.’ 식이다. 1부에서는 서문주가 자신이 장준익인 양 꿈을 꾼다. 2부에서는 백산호가 자신이 서문주인 양 꿈을 꾼다. 그 서사의 문학성이 좋다. 이 작품을 결코 만만한 작가가 쓴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에피소드마다의 문학적 내레이션을 위해 정서경은 쓰고 또 쓰고를 반복했을 것이다. 거의,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수준이다. 올 하반기에 또 한편의, 특이하다고 할 만한 OTT 드라마가 나왔다. 잊을 만하면 흥미로운 작품이 나온다. 이제 끝이다, 싶을 때 괜찮은 작품들이 나온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