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반전시킨 '인천상륙작전' 75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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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는 올해도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국가의 주한대사 등을 초청해 7일간 기념 행사를 개최한다.
인천시는 이달 12~18일 국가보훈부, 해군·해병대와 함께 인천시내 곳곳에서 '제75주년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를 연다고 3일 밝혔다.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9월 15일 연합군·국군이 월미도에 기습 상륙해 서울 탈환에 이어 북진할 수 있게 한 6·25전쟁의 전환점이었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이 작전에는 항공모함·구축함·순양함 등 세계 8개국에서 동원된 261척의 함정이 투입됐다. 당시 인천지역에 있던 북한군은 2000여 명에 불과해 아군의 피해는 적었으나, 월미도에 거주하는 양민들의 사상과 가옥들이 파괴되는 피해가 있었다.
이번 행사는 영흥도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인 특수임무 전사자 14명을 추모하면서 시작된다. 이어 맥아더 장군 동상과 월미도 원주민 희생자 위령비 헌화, 해군 첩보부대 전사자 추모식이 잇따라 열린다.
인천상륙작전 이전에 월미도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그해 8월 영흥도에 잠입한 해군 첩보부대원들이 있었다.
북한군의 배치 현황, 기뢰 여부, 상륙지점의 지형 파악 등 정보를 본부에 송신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임무 완수 철수하기 시작했으나 9월 14일 북한군의 기습으로 첩보부대원들이 희생됐다.
맥아더 장군은 6·25전쟁 당시 해안 상륙작전이 쉽지 않은 인천을 선택했다. 인천이 서울과 인접해 북한군의 강한 저항을 감수해야 하고, 조수의 차가 커서 함정의 상륙이 쉽지 않다는 부하들의 반대의견을 설득했다.
맥아더 장군은 북한군의 낙동강 전선 집중으로 인천 방어력이 약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략적·심리적·정치적 이유로 서울의 조기 탈환을 위해서 인천을 선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념주간인 14일에는 국방부 기수단, 취타대, 해군·해병대, 육군 제17보병사단, 주한 미8군 군악대가 동인천역부터 중구청까지 행진한다.
인천상륙작전 공식 기념식과 재연행사는 15일 인천항에서 열린다. 국내·외 참전용사와 해군·해병대 장병, 참전국 무관단, 시민 등 15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날 기념식의 일환으로 인천앞바다에서는 상륙작전 재연 행사가 펼쳐진다. 해군 상륙함과 고속상륙정, 해상작전헬기,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 등이 투입된다.
이밖에 인천상륙작전 기념 음악회, 창작 뮤지컬, 합창대회, 국제평화안전포럼 등 30여개의 다양한 행사가 추진된다.
올해 기념행사에는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당시 8개 참전국 가운데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의 주한대사(부대사)가 참여할 예정이다.
당초 8개 참전국 정상을 초청해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식에 버금가는 국제행사로 격을 높이겠다는 인천시의 계획은 무산됐다.
시 관계자는 "승전의 기념보다는 평화정신을 강조하는 시민참여 행사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강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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