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 재정으로 AI와 기본사회 '두마리 토끼'…승부수 던진 정부 [2026년 예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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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증가속도 못 늦추면 국가 신용등급 하락"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 29일 발표한 2026년 예산안에는 '경제 체질' 전환에 예산이 집중적으로 배정됐다. 연구개발(R&D)과 산업·에너지, 일반행정 등 총지출 증가율(8.1%)을 크게 웃돈 3개 분야 모두 AI 대전환과 차세대 첨단 기술 개발과 관계가 깊다.
R&D 예산은 사상 최대 규모인 35조3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9.3% 늘었다. AI 분산형 전력망 구축과 에너지 대전환에 투입하는 산업·에너지 분야 예산도 32조3000억원으로 14.7% 증가했다. 일반행정 예산(121조1000억원)이 9.4% 늘어난 것 역시 한미 관세 협상에 따른 정책금융 지원을 위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출자 등에 1조9000억원을 배정했기 때문이다.
'재정 급가속'에 흔들리는 부채비율 58%
문제는 우리나라의 재정이 이러한 재정 급가속을 견뎌낼 수 있느냐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총지출(예산)은 2025년 673조3000억원(본예산 기준)에서 2029년 834조7000억원으로 161조4000억원(24.0%) 늘어난다.문재인 정부(2017~2022년) 5년간 지출 증가 규모(178조9000억)와 맞먹는 수준이다. 올 초 국제통화기금(IMF)이 예상한 우리나라의 2029년 총지출(710조1000억원)을 125조원 웃돈다.
반면 재정수입은 2025년 651조6000억원에서 2029년 771조1000억원으로 119조5000억원(18.3%) 늘어나는 데 그친다. 총지출이 연평균 5.5% 느는 동안 재정수입은 연평균 4.3% 증가한다. 재정수입의 근간인 국세수입 연평균 증가율도 4.6%에 그친다. 정부 예상대로라면 정부 재정은 매년 54조~69조원의 적자를 낸다.
재정수입이 정부 예상대로 매년 4.3%씩 늘어날지도 의문부호가 따른다. 장문선 기획재정부 재정정책국장은 "2011년 이후 14차례 작성된 5년 단위 중기계획에서 국세수입 연평균 증가율이 4.6% 이하인 경우는 4차례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이 0.8%와 1.6%로 예상되는 등 저성장이 장기화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낙관적인 추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45조6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4.2%에 달한다. 관리재정수지는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장성 기금 흑자분을 제외하고, 실질적인 재정 상황을 보여주는 장부값이다. 2026~2029년도 관리재정수지 적자율은 4.0~4.4%로 적자 비율을 3% 이내에서 관리하겠다는 재정준칙을 한 해도 지키지 못하게 된다.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매년 수십조 원 규모의 적자국채를 발행하면서 올해 49.1%인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매년 2%포인트씩 늘어 2029년 58%에 달할 전망이다. 연금급여와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지급 등 의무지출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늘어나면 이재명 대통령 임기 내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길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이다.
나랏빚이 급증하면서 국채 이자 비용은 2020년 16조8000억원에서 올해 30조100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기재부는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채 이자 비율이 1.4%로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을 밑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올해 예산의 8.5%(9조6000억엔)를 국채 이자 갚는데 쓰는 일본과 닮은 꼴이 되어 간다고 우려했다. 2029년까지 국고채 이자가 재정지출의 약 5%에 달하는 40조~44조원까지 불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국제 신평사 "신용등급 하향" 경고
IMF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민간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 비율은 200%를 넘는다. OECD 회원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높다. 민간부채와 기업부채가 모두 높은 우리나라가 국제 신용평가사들로부터 세 번째로 높은 신용등급(AA)을 받은 건 국가채무비율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국가채무비율이 급상승하면서 재정건전성을 우리나라의 장점으로 평가하던 국제 신평사들의 시각도 바뀌고 있다. 작년 5월과 올해 2월 무디스와 피치는 각각 "고령화 지출 등으로 정부 부채가 지속해서 늘어날 경우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신용등급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입 확충과 함께 강력한 의무지출 구조조정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전체 예산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0% 중반대를 향하고 있다. 2029년까지 연평균 증가 속도 또한 의무지출은 6.3%로 4.6%의 재량지출을 앞선다.
지출을 27조원 줄인 이번 예산안에서도 정부의 정책 판단에 따른 지출인 재량지출을 25조원 줄였을 뿐 의무지출 구조조정은 2조원에 불과했다. 교육세 보통교부금을 4103억원 줄인 것을 제외하면 예산 규모가 71조6000억원과 69조4000억원에 달하는 교육교부금과 지방교부세는 물론, 실업급여와 기초연금 등도 거의 손대지 못했다.
한 번 늘린 의무지출을 줄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지만 이번 예산안에는 '이재명식 기본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의무지출이 대거 추가됐다. 청년미래적금을 신설하고, 청년 월세 지원 사업을 상시화했다. 지역사랑상품권의 국비보조율을 2~5%에서 3~7%로, 구직촉진수당은 50만원에서 60만원으로 올렸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재로서는 교육교부금과 지방교부세 등의 재원을 구조조정할 계획은 없다"며 "중앙정부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성과가 저조한 사업을 구조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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