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맞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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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담배에 대해선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조선 후기 신분에 따라 담뱃대 길이가 비례하게 됐는데, 장죽을 쓰는 양반은 혼자서 불을 붙일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이 불을 붙여 줘야 했다. 따라서 부자간에 같이 피우면 아버지가 아들 담뱃대 붙을 붙여주는 꼴사나운 광경이 연출돼 맞담배 금지 풍습이 생겼다는 것이다.
맞담배 금지가 위계와 상관된 것이니, 반대로 자유로운 흡연은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과거 한 재벌 회장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유학 중인 20대 후반의 장남이 급거 귀국해 자리를 잇게 됐다. 그 후계자는 첫 사장단 회의에서 아버지뻘인 사장들 앞에서 혼자서 재떨이를 놓고 담배를 피우며 보고받고는, 사장들은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도록 했다고 한다. 그 나름대로 조직을 장악하는 방법이었던 셈이다.
담배를 절대 권력의 과시용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북한 김정은이다. 그가 군부대 등을 시찰할 때 담배를 피우면서 일장 훈시하고 옆에선 나이 많은 장성들이 연방 메모하고, 한쪽에선 여동생 김여정이 재떨이를 들고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북한 노동신문이 얼마 전 김정은이 러시아 파병 지휘관들을 집무실에서 격려하는 사진을 내보냈다. 지휘관들 앞에 담배, 재떨이, 성냥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맞담배를 허용한 듯하다. ‘최고 존엄’으로부터 극상의 대우를 받은 격이다. 재밌는 것은 라이터 대신 성냥을 쓴다는 점이다. 라이터 불이 폐에 더 안 좋아 김정은에게 성냥을 사용하도록 한다고 한다. 그 성냥도 아무데서나 만든 게 아니다. 김정은을 위한 장수 연구 기관, 만수무강연구소에서 만든 것이다. 이 사진과 그에 얽힌 얘기만 봐도 김정은의 북한은 정상 국가와는 한참 거리가 먼 나라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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