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이 차고 넘친다…라운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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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0.1%를 위한 공간들
0.1%를 위한 공간들
1936년 아메리칸항공의 최고경영자(CEO)였던 C R 스미스는 VIP 고객을 이렇게 불렀다. 정·재계 거물과 유명 인사 등 극소수에게만 이런 호칭을 부여했다. ‘당신은 특별하다’는 마케팅은 힘 있는 사람들을 아메리칸항공의 충성고객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아메리칸항공은 3년 뒤 미국 뉴욕 라과디아공항에 이 칭호를 받은 고객들을 위한 ‘제독 클럽’을 열었다. VIP 라운지의 시초였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자아실현 욕구’를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욕구라고 정의했다. ‘나는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과 ‘이 브랜드는 나의 품격에 꼭 맞다’는 감정.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상위 0.1%에 입성한 사람은 제품 그 자체보다 특별한 경험에 지갑을 연다. VIP 라운지는 그런 감정을 가장 확실하게 전달하는 장소다.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5층에는 간판도, 안내문도 없는 264㎡(약 80평)짜리 공간이 있다. 제네시스 G90 중에서도 가장 비싼 상위 3개 모델 오너들만을 위한 프라이빗 라운지를 드나들 수 있는 ‘프리패스’를 보유한 이는 대한민국에서 2500여 명뿐이다.
이제 ‘공간’은 기업들이 VIP 고객의 마음을 사는 데 꼭 필요한 마케팅 무기가 됐다.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의 ‘어퍼하우스’도 그중 하나다. 연간 수억원어치 물품을 사들인 고객에게만 열리는 공간이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 라운지는 예술 작품이 어우러진 프라이빗 룸으로 꾸며졌다. 프랑스 ‘크리스토플’에 담긴 브런치는 럭셔리의 결정체다.
언제 가도 북적대는 인천국제공항에도 한갓진 공간이 있다. 대한항공 일등석 탑승객만을 위한 체크인 카운터 라운지다. ‘퍼스트클래스’라고 쓰인 금색 로고 옆 두툼한 문을 열면 고급스러운 카펫이 깔린 안락한 공간이 나온다. VIP는 한식 다과와 음료만 즐기면 된다. 발권부터 수하물 위탁까지 알아서 다 해주니까.
VIP 라운지는 이제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상위 0.1% 고객을 위한 무형의 언어로 진화했다.
한국 美 담은 비밀 공간…온몸으로 프리미엄 느낀다
제네시스 브랜드 10년…장충동 신라호텔 5층 가보니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5층에는 딱 2500명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공간이 있다. G90 롱휠베이스 블랙(1억7377만원), G90 롱휠베이스(1억6647만원), G90 블랙(1억2817만원) 등 제네시스 G90 최상위 세 개 모델 오너만 가입할 수 있는 ‘제네시스 라운지’다. 워낙 회원 수가 적다 보니 문을 연 지 2년6개월이 됐는데도 이 공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내·외부를 꾸민 이는 유명 건축가인 최욱 원오원아키텍츠 소장. 그는 신라호텔 영빈관이 내려다보이는 자리를 콕 집어 제네시스 오너를 위한 아지트로 만들었다.
올해 브랜드 출범 10주년을 맞아 제네시스가 공개한 제네시스 라운지를 체험했다. 한국 전통미와 럭셔리가 어우러진 세심한 ‘환대’를 경험할 수 있었다. 제네시스 라운지 내부는 한국 고유의 건축 개념인 ‘터’에 착안한 여백과 열린 공간의 미학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의 미(美)’에 기반한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제네시스의 정체성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오픈 다이닝 홀과 프라이빗 다이닝 룸 등 각 공간은 경계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빛의 반사율과 투과율, 흡수율을 고려해 선정한 메탈, 아크릴, 흙 등 각종 자재는 전통 건축물에 많이 쓰이는 화강석과 정교하게 맞물린다. 입구에는 이능호 작가의 도자기 작품을 배치해 화사함을 더했다.
라운지 입구에 들어서자 위스키가 가득한 선반 위 통창 너머로 남산타워가 한눈에 들어왔다. 바에는 한국 전통 차를 비롯해 45종의 싱글 몰트 위스키와 샴페인, 와인이 마련돼 있다. 사운드 룸도 있다. 스피커 디자이너 유국일 명장이 수작업으로 제작한 사운드 시스템이 설치됐다. 독립된 공간에 앉아 고성능 금속 스피커가 뿜어내는 클래식 음악을 원음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차가 달릴 때 나는 소음을 최소화하고, 차 타는 즐거움을 오감으로 느끼게 해주는 제네시스의 실내 공간 철학과 맞닿아 있다.
다이닝 룸의 주인공은 한국 전통 조각보의 문양과 색감을 모티브로 설희경 작가가 제작한 테이블이다. 눈에는 남산을 담고, 입으로는 최고급 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전통 한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제네시스 다이닝 코스의 메뉴는 계절마다 바뀐다.
올여름에는 더위를 이겨낸 선조의 지혜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메뉴를 내놨다. 제네시스 가든차를 발효시킨 청량한 콤부차를 시작으로 단새우 월과채, 여름 채소 만두, 민어, 닭백숙, 누룩 숙성 한우 안창살 구이와 솥밥, 청포도와 순다리, 누룽지 아이스크림 등 여름철 원기 회복을 돕는 음식이 차례차례 나온다. 화려한 맛은 아니지만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문정균 제네시스 공간경험실장은 “한식의 소박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매력이 조화를 이루는 코스”라며 “매 시즌 한국의 제철 식자재와 조리법을 활용하는데 담백하고 은은하게 재료 본연의 풍미를 살리는 데 신경 쓴다”고 설명했다.
와인에도 특별함을 담았다. 미국 허드슨와이너리의 ‘레이디버그 샤르도네 2022’는 제네시스 라운지에서만 제공되는 한정판이다. 소믈리에가 선별한 위스키와 차, 와인과의 페어링 코스는 제네시스 고객에게 미식의 완성을 선사한다. 가족, 지인들과 함께하는 프라이빗 다이닝 서비스는 전화 또는 제네시스 부티크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두 달 간격으로 열리는 예약은 오픈과 동시에 마감될 정도로 제네시스 오너들에게 인기다.
송민규 제네시스사업본부장(부사장)은 “제네시스 라운지는 단순한 고객 응대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 철학을 오감으로 느끼는 곳”이라며 “제네시스는 단순히 자동차를 잘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라 한국식 럭셔리를 어떻게 정의하고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을 축적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네시스는 2015년 출범 이후 한국 90만 대, 해외 50만 대 등 전 세계에서 140만여 대가 팔렸다. 출범 이듬해인 2016년 31.1%이던 해외 판매 비중은 올해 5월 45%까지 늘어나며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에서 세를 불리고 있다.
車 보러 왔다 茶 마신다…맨해튼 중심서 K전통에 눈 뜬 뉴요커들
美 '제네시스 하우스 뉴욕'
제네시스 하우스는 2021년 미국 뉴욕 맨해튼의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에 문을 열었다. 과거 정육·도매상이 밀집한 산업 지대에서 고급 브랜드 쇼룸과 힙한 갤러리가 공존하는 뉴욕 문화 중심지로 거듭난 동네다. 전통과 현대, 첨단과 예술이 어우러진 이 구역에서도 제네시스 하우스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4340㎡ 규모의 제네시스 하우스는 단순한 자동차 전시관을 넘어 미식, 독서, 산책, 전시 관람까지 즐길 수 있는 도심 속 문화 라운지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미(美)가 깃든 제네시스 브랜드만의 미학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모든 제네시스 모델을 경험할 수 있는 1층의 차량 스튜디오는 기본이다. 허드슨강과 맨해튼의 스카이라인, 공중정원 명소인 하이라인 파크까지 한눈에 펼쳐지는 2층은 한옥과 정자가 모티브가 됐다. 한국적 일상을 뉴욕에서도 누구나 체험할 수 있게 공간을 꾸몄다. 미쉐린 가이드에도 오른 제네시스 하우스 레스토랑에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식을, 좌식 다실로 꾸며진 ‘티 파빌리온’에선 전통 차(茶)와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제네시스 하우스의 숨은 주인공은 지하 1층의 브랜드 문화 공간, ‘셀러 스테이지’다. LED 스크린과 조명, 고성능 음향 시스템 등을 갖춘 이곳에서 어지간한 갤러리보다 더 밀도 높은 전시를 선보인다. 올 5~6월엔 할리우드 유명 배우 귀네스 팰트로, 세계적인 플로리스트 제프 리섬과 협업해 기획한 몰입형 체험 전시 ‘더 포레스트 위딘(The Forest Within·내면의 숲)’이 열려 7만8000여 명이 다녀갔다.
한국 소백산의 봄을 모티브로 작약이 가득 핀 꽃밭과 깊은 산속 소나무, 이끼 낀 바위와 개울까지 구현한 이 전시는 하루 수백 명씩 줄을 서서 들어갈 만큼 인기가 뜨거웠다.
신정은/김보형 기자/뉴욕=빈난새 특파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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