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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광 선배의 카카오톡에는 덱스터 고든이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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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 이봉호의 원픽! 재즈 앨범

    덱스터 고든의 앨범 <Our Man in Paris>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이들의 목적은 실로 다양하다. 자신의 이미지를 과장하기 위해, 인맥 쌓기를 활용한 개인적인 비즈니스를 위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훔쳐보기 위해, 그것도 아니라면 일부 지인과의 소통을 위해서일 것이다. 이제는 인스타그램에 일정 지분을 내줬지만, 페이스북은 고참 SNS로 여전히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2019년부터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처음 페이스북을 시작할 때는 위에 나열했던 종류의 목적 자체가 없었다. 아니 몰랐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평소 좋아하는 문화콘텐츠를 포스팅하면서 댓글이나 반응을 검색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면서 점점 페이스북의 이용 목적이 뚜렷해졌다. 음악, 영화, 미술, 책 등의 콘텐츠 중에서 음악 쪽으로 손길이 자주 가더라. 자연스럽게 레코드 수집가, 뮤지션, LP 바 사장 등과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페이스북에서 보이는 모습은 절반 이상이 실제보다 과장된 이미지였다. 자신을 벼락부자로 만들거나, 사회적 위치에 힘을 주거나, 여유가 넘치는 일상으로 포장해버린 모호한 이미지가 그것이었다. 미국에서 제작한 SNS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미 관련 업체에서 기술한 이미지를 유도했다는 내용이 확인되었다. 상당수의 이용자는 늘어나는 ‘좋아요’ 숫자를 확인하려고 10분이 멀다 하고 SNS를 확인한다.

    이러한 행위는 개발회사의 광고 수입을 올려주는 반사 효과를 만들어줬다. 필자 역시 관련 이미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에 알고 지냈던 누군가가 페이스북에서 보여주는 지나친 과장은 해당 인물을 만날 때마다 어색함을 가중시켰다. 그래서 용기를 내보았다. 페이스북이라는 공간이 아닌 현실에서 관심 있는 이들을 직접 만나보기로 한 것이다.

    대부분이 술을 즐기면서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첫 만남 후에도 오프라인에서 인연이 이어진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부언하다시피 절반 이상이 페이스북과는 상반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대방도 필자를 보면서 복잡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만나서 술잔을 기울였던 이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페이스북에서 지나친 허세와 가식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사진출처. unsplash
    사진출처. unsplash
    2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이탈리아를 여행 중인 필자의 페이스북에 댓글이 달려 있었다. 댓글의 정체는 30대 초반에 알게 된 직장 선배였다. 필자의 여행기를 발견했던 선배가 먼저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취해 온 것이었다. 과거에 그와 급격하게 가까워지게 한 매개는 바로 재즈였다. 필자처럼 재즈를 좋아하는 선배와 가끔 안부를 주고받았지만 2003년 소속 회사가 달라지면서 연락이 끊어진 상태였다.

    차일피일 미루었던 만남이 이루어진 시기는 2025년 6월이었다. 필자는 올해 4월부터 유럽에 체류하던 선배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해서 6월 말에 귀국하면 반드시 회동하자고 제안했다. 드디어 만남은 이루어졌다. 우리는 엘피 바에서 재즈 이야기와 20년의 세월을 복기했다. 선배는 예전보다 더욱 괜찮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고 70개국의 나라와 450개 도시에 관한 여행담을 아낌없이 들려줬다. 지난 6월부터 카카오톡을 연결하면서 확인한 선배의 카카오 대문에는 재즈 색소포니스트 덱스터 고든의 사진이 나와 있었다. 여전히 재즈 러버의 삶을 놓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순간 재즈동호회 운영진으로 활동한다는 선배의 말이 기억 위로 부상했다.
    재즈 색소포니스트 덱스터 고든(1923~1990).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재즈 색소포니스트 덱스터 고든(1923~1990).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1923년생인 색소포니스트 덱스터 고든은 학생 시절부터 버디 콜렛과 치코 해밀턴 밴드의 멤버로 활약했다. 1958년에 사보이 레이블에서 데뷔 앨범 <Dexter Rides Again!>을 내놓았던 그는 1961년부터 블루 노트 레이블과 연작 음반을 녹음했다. 소개하는 <Our Man In Paris>은 1963년 파리의 CBS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블루 노트 레이블을 통해 세상에 나왔던 작품이다. 앨범 타이틀처럼 덱스터 고든은 파리지앵 거주자인 피아니스트 버드 파월과 드러머 케니 클라크, 파리 토박이인 베이시스트 피에르 미셸로와 녹음을 마무리했다.

    [덱스터 고든의 <Our Man in Paris> 앨범 전곡 듣기]

    <Our Man In Paris>는 2003년 루디 반 겔더에 의해 리마스터링되어 블루 노트의 RVG 에디션 시리즈의 일부로 출시되었다. 덱스터 고든은 배우로도 활동한 전력이 있다. 그는 재즈맨 레스터 영과 버드 파웰을 모델로 했던 1986년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에서 1950년대 후반 파리의 외국인 재즈 뮤지션인 데일 터너 역을 호연했다. 덱스터 고든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프랑스 문화부에 의해 프랑스 예술 및 문학 훈장 회원이자 임원으로 임명되었다.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에서 덱스터 고든. / 사진. © IMDb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에서 덱스터 고든. / 사진. © IMDb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 포스터. / 사진. © IMDb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 포스터. / 사진. © IMDb
    이봉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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