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한양도성을 따라 걷는 '순성(巡城)’이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치안 유지가 목적이었던 '순성’은 그곳을 거닐던 사람들에 의해 차츰 풍류의 의미로 확장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당시 한양도성을 걸었던 사람들은 성 안팎의 경치를 즐기며 소원을 빌었다고 하는데요. 이른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성곽길 걷기는 계속되었을 터인데, 어쩐지 복원된 그 길을 아이들과 함께 걸을 땐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기분이 듭니다. 고창읍성, 순천의 낙안읍성처럼 수도 밖 고을의 성곽에서도 여럿이 지르밟는 걷기가 풍습으로 전해졌다고 하지요. 불현듯,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고유의 걸음걸이와 궤적에는 저마다 어떤 소리가 존재할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성곽길 산책을 비롯한 바깥나들이를 할 때마다, 한창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두 딸들은 여지없이 학습한 기술을 펼쳐 보이곤 했습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발레를 하듯 율동감 있는 걸음을 걸었죠. 그런 아이들의 발걸음을 보며 '발레 메카니크(Ballet Mecanique)’라는 곡을 떠올렸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아방가르드 작곡가인 조지 앤타일(George Antheil)은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그 가운데 후대의 음악가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곡(일종의 작풍을 만들어낸 음악)이 '발레 메카니크’입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도 '발레 메카니크’를 지었습니다. 막상 발레곡이 아니지만, 어느덧 '발레’를 떠올릴 때 가장 앞세우고 싶은 음악이 됐습니다. 오케스트라로 편곡된 이 음악은 도입부부터 어린아이들이 종종걸음으로 발레 동작을 즐기는 것처럼 연주됩니다. 콘트라베이스부터 바이올린에 이르기까지 현악기 연주자들은 한결같이 피치카토(손으로 뜯거나 튕기는 연주법)로 연주하고, 바순 연주자들은 입으로 리드를 부는 대신 손등을 사용해 악기를 툭툭 치며 장단을 맞춥니다. 마림바와 비브라폰 같은 타악기들도 초반부터 함께 걷는 듯이 합을 맞춥니다. 그래서일까요?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발레 동작을 하듯 걸어가면 이 음악이 떠올라 저도 사뿐사뿐 걷거나 어깨를 들썩이게 됩니다.
[ ♪ 사카모토 류이치 - 발레 메카니크]
걷는 모습을 닮은 발레 음악이 또 있습니다. 바로 '스파르타쿠스' 발레곡입니다. 아람 하차투리안(Aram Khachaturian)의 곡 중 가장 대중적인 음악은 가면무도회 왈츠이지만, 의외로 '스파르타쿠스' 발레곡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희 집 둘째 아이도 후자에 해당되었던 모양입니다. 가면무도회 왈츠의 작곡가 이름을 기억하는 일은 어려워했으면서도 늘 이 발레곡은 즐겼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람 하차투리안의 이 곡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발레 메카니크’만큼이나 아이들이 발레 동작을 하듯 걸을 때 저도 모르게 들려주게 되는 음악이 됐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입니다만, 고전음악 가운데에서도 조금은 투박하고 촌스럽다고 느꼈던 분류가 있습니다. 바로 행진곡입니다.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Pomp and Circumstance Military Marches)',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 '개선행진곡'에 이르기까지, 고전음악 중에는 유난히 귀에 익숙한 행진곡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행진곡만큼 씩씩하고 신나는 감정을 안겨준 음악도 드물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그 시기를 기분 좋은 장면으로 채워주는 것도 바로 행진곡이었고요. 운동회와 체육대회, 각종 시상식에서도 행진곡은 어김없이 등장하곤 했습니다.
아버지들의 우직함을 닮은 행진곡에 관해 되뇌다 보니, 어느새 '음악을 들으며 생각한 걸음’과 '걸으며 생각한 음악’이 맞닿기 시작했습니다.
음악을 듣고 생각한 발걸음
오케스트라의 첼로를 맡고 있는 큰아이가 집으로 돌아와 연습을 이어간 적이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주한다기에 자연스레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1996)>이나 동명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1968)> 속 음악이겠구나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연주를 시작한 곡은 다름 아닌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발레모음곡 1번인 '로미오와 줄리엣’이었습니다. 몬태규 가문과 캐플릿 가문이 서로 맞부딪혀 싸움이 벌어지기 직전,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상대 진영 속으로 발을 내딛는 움직임이 그대로 전해지는 그 음악 말입니다. 발레를 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는 힘찬 발걸음입니다. 오케스트라의 현악기와 관악기를 총동원한 이 발걸음은 플루트가 등장하며 소강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선뜻 숨을 내쉬기 어려울 만큼의 비장한 긴장감을 담고 있습니다.
종종 자전거와 걷기에 관해 예찬하는 소설가 김훈 선생은 수필집 <허송세월>을 통해 음악처럼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그 시선이 너무도 따뜻해, 문장을 읽는 동안 행진곡처럼 씩씩한 아버지들의 걸음걸이와 발레하듯 걷는 어린이들을 다시 한번 떠올렸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길을 걸어갈 때도 몸이 리듬으로 출렁거린다. 몸속에서 기쁨이 솟구쳐서 아이들은 오른쪽으로 뛰고 왼쪽으로 뛴다. 아이들의 몸속에서 새롭게 빚어지는 시간이 아이들의 몸에 리듬을 실어 준다. (중략) 이 장난치는 어린것들의 몸의 리듬을 들여다보는 일은 늙어 가는 나의 내밀한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