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시는 중국미술관과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 공동주최로 6월 11일부터 8월 11일까지 베이징 소재 중국미술관에서 열린다.
<수묵별미(水墨別味) 한·중 근현대회화> 전시 포스터. / 필자 제공
지난 2024년 11월,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먼저 개막하여 많은 한국 관람객들의 호응과 찬사를 받은 바 있는 이 전시는 한국과 중국의 수묵화가 지닌 동시대의 의미와 수묵 채색화의 미학적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이제 베이징으로 건너와 중국 관람객들에게 시공을 초월한 미의 향연을 선사함과 동시에 마음의 교감을 나누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였다.
한국과 중국은 천년의 세월 동안 수묵을 통해 깊이 교류해 왔으며 수묵은 동양 철학적 사유의 매체였다. 이번 전시는 전통 수묵 회화의 주요 장르인 인물화, 산수화, 화조화부터 현대적 구상과 추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통해 수묵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재해석되고 계승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전시 작품은 양국의 국가급 미술관인 한국 국립현대미술관과 중국국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근현대 수묵 예술작품과 현대 작가들의 신작 중에서 엄선하였다. 전시장 구성은 한국과 중국, 두 부분의 섹션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각 두 개의 장으로 나누어, 근현대 수묵 채색화가 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 아래 사회적 영향을 반영하며 작가의 독특한 예술적 면모로 흘러온 길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하였다.
산수, 인물, 화조 같은 전통 회화의 화목(畵目)들은 조선의 개화 이후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근대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전통 회화에도 차츰 시각적인 사실성이 강조되었고, 화가들은 각자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며 고유한 의식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예술세계를 펼쳐가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기존의 ‘서화’란 명칭은 글씨와 그림이 분리되어 그림을 ‘동앙화’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1923년에는 동연사(同硏사)라는 미술 단체가 결성되어 전통적인 관념 산수화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양식을 시도하였다. 동연사의 화가들은 원근법과 명암법 등 서양 미술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나무나 산수 표현 등에서는 전래의 준법을 따르는 등 구습의 동양화와 서양화, 일본화로부터 벗어나 한국의 근대적 사회변화에 따른 세계관, 회화관을 추구하는 새로운 화법을 구사했다.
1930년대에 이르면서 점차 수묵은 ‘산수’를, 채색은 ‘인물’을 표현하는 양상을 띠는데 이로 인해 ‘채색은 일본인의 미의식이 강하게 내재된 그림’이라는 왜색(倭色)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1950년대에는 모더니즘이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며 동양화에도 큐비즘과 앵포르멜의 추상 양식이 차용되기도 하였다.
1960~70년대에는 ‘한국적인 것의 재발견’을 도모하였고, 생활 주변의 일상적 풍경을 사생한 산수화가 ‘국민 그림’이 되었다. 인물화에서는 주변에서 쉽게 보이는 일하는 사람을 묘사하는 그림 등이 출현하였다. 또한 동양화가들의 친목 단체인 ‘묵림회(墨林會)’가 결성되어 이 작가들은 지필묵의 더 다양한 변화를 제시하였다. 이처럼 1970년대 이후에는 한국적인 소재와 현대미술 양식이 조화를 이루며 동양화의 현대적인 창신(創新)을 도모하였다.
경계를 넘어 확장을 향해 (한국관-제2장)
1960년대 비정형 추상미술의 앵포르멜과, 1970년대 흑백의 단색 회화 모노크롬에 이어 1980년대 후반부터는 탈구조 이론과 해체론을 내세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한국 미술계의 흐름에 발맞추어 동양 화단 내에서도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외에도 민간이 주도하는 다양한 공모전이 개최되었고, 서양화와의 구분을 위해 사용하였던 ‘동양화’라는 명칭을 바꾸어 우리의 전통 재료와 양식 및 기법을 따르는 그림을 ‘한국화’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수묵 한국화 화단은 더 나아가 새로운 조형성을 추구하거나 기법의 전환을 통해 한국화를 현대 미술 장르의 하나로 확고히 자리 잡게 하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였다. 한편에서는 채색화가 급부상하기도 하였는데, 한국적 색채를 강조하면서도 굵고 강한 선, 두꺼운 원색 등을 배열하며 동서양의 경계를 허물었다. 또한 새로운 도시 경관을 다양하게 재현한 도시 풍정(風情) 그림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한국화의 새로운 영역을 확장해 나아갔다.
1990년대가 되면서 동서양의 매체 구별이 불분명해지고 평면과 입체의 경계가 허물어져 미술에서 점차 장르의 구분이 사라지게 된다. 이때 한국화는 점점 ‘한국화’의 정의와 규정, 재료와 소재, 형식과 장르 등 모든 면에서 다른 매체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 이후 현대의 한국화 작가들은 재료와 장르를 넘나들며 수묵 추상의 새로운 장을 펼치고, 지필묵의 숨은 잠재력을 이끌어내었다.
안중식, 춘경산수(春景山水). / 필자 제공
(왼쪽부터) 심경자 <연륜(年輪)>과 김기창 <군마(群馬)>. / 필자 제공
서정태, 언덕 위에 빨간나무. / 필자 제공전통의 재발견 (중국관-제1장)
지난 100년 동안 중국은 거대한 변화를 겪으며 민족적 각성과 문화적 계몽을 위해 무단히 애썼다. 그 안에서 중국 미술가들은 ‘고전을 바탕으로 현재를 열고’, ‘동서양 융합’을 실천하면서도 민족성을 잃지 않은 수많은 작품을 쏟아내었다. 이 작품들은 사상이 깊고, 주제가 분명하며, 형식이 참신하고, 내포된 의미가 풍부했다. 중국인들에게 수묵화는 예술적 자긍심이자 불굴의 민족의식을 견지하는 정신적 위로였다. 첫 번째 장에서는 중국미술관의 소장품 13만여 점 중에서 30여 점의 대표적인 현대 중국 예술가들의 고전적인 수묵 작품을 엄선하였다. 여기에는 우창숴의 <구슬 빛(珠光)>, 치바이스의 <연꽃과 원앙(荷花鴛鴦)>, 쉬베이훙의 <전마(戰馬)>, 장다쳰의 <시구를 찾는 그림(覓句圖)>, 린펑몐의 <물수리와 작은 배(魚鷹小舟)>, 푸바오스의 <타오구에게 주는 글(陶穀贈詞)> 등이 전시되었다.
다양성과 번영 (중국관-제2장)
이 장에서는 19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기의 예술가들이 일군 창작의 성과를 보여준다.
“필묵은 시대를 따라야 한다.” 필묵을 통해 시대의 풍모를 드러내고, 대중의 마음을 기르며, 민족의 자긍을 고취하는 것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새 시대의 예술적 명제이다. 중국의 꿈을 시대의 주제로 삼고, 중국 정신을 예술의 혼으로 삼으며 중국의 풍격을 예술적 추구로 삼는 것은 현대 중국 예술가들의 문화적 자신감과 문화적 자각을 뒷받침해 준다고 미술관 측은 제2장의 주제를 소개했다.
중국 현대 수묵 예술가들은 시대 발전의 목격자이자 기록자로서 각자의 경험과 체험을 바탕으로 시대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시대의 과제에 답하며, 시대의 미적 요구를 반영한 예술 창조의 정점을 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들은 지금, 중국식 현대 미술 발전의 새로운 장을 써나가고 있다.
(왼쪽부터)치바이스 <연꽃과 원앙(荷花和鴛鴦)>과 쉬페이홍의 <전마(戰馬)>. /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