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끄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오페라 부프 <도둑들 (Les Brigands)>
프랑스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7월 9일, 파리 갸르니에 오페라 극장
현대적 감각의 정치 풍자
프랑스 국립 오페라단의 시즌 막바지는 오펜바흐의 <도둑들>이 장식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오락용 오페라 부프에 머무르지 않고, 부패한 사회 구조를 신랄하게 비웃는다. 작품에 담긴 19세기 유럽의 정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는 바리 코스키의 해석으로 오늘날의 상황과 맞물리며 관객의 공감을 자아냈고, 이에 대한 현지 반응은 호불호가 엇갈리며 더욱 주목을 끌었다. 그로테스크한 의상과 지나치게 시사성을 염두에 둔 연출이 작품의 예술적 본질과는 다소 동떨어져 실망스러웠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오펜바흐의 고전 오페라 부프를 현대적 감각과 정치적 풍자를 통해 새롭게 재해석했다는 호평도 이어졌다. 특히, 음악적 에너지와 배우들의 활약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 작곡가 쟈끄 오펜바흐는 1819년 6월 20일 독일 쾰른에서 유대교 회당의 성가대 지휘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홉 살에 작곡을 시작했으며, 첼로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그는 파리로 유학을 떠났는데, 당시에는 유대인 음악가가 전문적인 음악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유일한 도시가 바로 파리였다. 오펜바흐는 불과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파리 고등음악원(당시 파리 음악원장은 루이지 케루비니)에 입학했고, 이후 오페라 코미크 극장의 오케스트라에서 첼로 연주자로 활동하며 작곡가 쟈끄 알레비에게 실력을 인정받았다.
쟈끄 오펜바흐 / 사진. ⓒNadar, 출처. 위키피디아
1848년의 혁명 - 유럽 전역에 걸쳐 확산한 자유주의적·민주주의적 성격의 혁명, 흔히 “1848년 혁명” 또는 “민족의 봄”이라 불림 - 으로 인해 그는 잠시 쾰른으로 돌아가야 했던 오펜바흐는 1850년에 파리로 복귀한 후 프랑스 극장의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1855년에 <섬의 여왕(La Reine des Îles)>을 작곡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해에 부프-파리지앵 극장을 설립하여 1866년까지 운영하면서 이 극장에서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첫 대성공작 <지옥의 오르페우스(Orphée aux Enfers)>(1858)도 바로 이곳에서 초연되었다. 이후 그는 대본 작가인 메이약과 알레비와 함께 프랑스식 오페라 부프(opéra-bouffe, 희가극)의 창시자로 자리매김하였고, <아름다운 헬렌(La Belle Hélène)>(1864), <푸른 수염(Barbe-Bleue)>(1866), <파리의 생활(La Vie parisienne)>, <제롤슈타인 대공작 부인(La Grande-Duchesse de Gérolstein)>(1867) 및 <페리콜(La Périchole)>(1868) 등 대표작들을 연이어 발표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오펜바흐의 작품에 담긴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즉, 당대의 생동감 넘치고 걱정 없어 보이는 서민들의 소박한 삶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과 유머와 풍자를 통해 정치적·사회적 부조리를 꼬집는다는 점이다. 그는 제2제정 시대(Second Empire) 프랑스 음악계를 지배하는 인물이 되었으나, 1870년 독일과의 전쟁(보불 전쟁)은 프랑스 내에서 그의 명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고, 그는 다시 파리를 떠나야 했다. 1871년 파리로 복귀한 오펜바흐는 애국적 내용을 담은 오페라 코믹 양식의 <파바르 부인(Madame Favart)>과 <북치기 소녀(La Fille du tambour-major)>를 작곡했다.
1873년에는 게떼 리릭 극장의 지휘를 맡아 <달나라 여행(Le Voyage dans la lune)>을 발표하지만, 극장은 곧 파산하고 만다. 통풍과 류머티즘으로 건강은 악화되었고, 재정적으로도 몰락한 오펜바흐는, 자신을 ‘진지한 작곡가’로 인정받게 해줄 작품이라고 여겼던 <호프만의 이야기(Les Contes d’Hoffmann)>를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1880년 10월 4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부패한 사회 구조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작품
오펜바흐의 <도둑들>은 양심 있는 도둑들이 부패한 권력자들을 속이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고 사기를 치려다, 오히려 귀족과 정치인들이 더 조직적이고 파렴치하게 국민을 착취하는 현실을 마주하며 좌절하는 풍자극이다. 산속 은신처에서 출발한 도둑단은 공작국의 궁정에 침투해 위장 결혼과 외교 사칭 등으로 금고를 털지만, 그 과정에서 권력자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부도덕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그들은 "우리는 그래도 양심을 갖고 도둑질한다"라는 자조적 선언과 함께, 세상은 자신들보다 더 나쁜 도둑들로 가득하다는 비판을 남기고 무대를 떠난다.
호주 출신의 바리 코스키는 2012년부터 2022년까지, 혁신적이고 재치 있는 해석의 오페라 제작으로 유명한 베를린의 코미셰 오퍼(Komische Oper Berlin)에서 경력을 쌓은 연출가이다. 젊은 시절 오펜바흐 음악을 처음 접한 순간부터 즉각 매료된 그는, 오페라 부프를 자신의 전문 영역으로 삼아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연출력으로 오페라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오펜바흐는 기존의 다양한 어법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작곡가이다. 리듬과 멜로디가 조화롭게 엮이는 그만의 고유한 어법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오펜바흐 음악에 담긴 풍자와 유머 안에는, 짜릿하게 이성적으로 공감하게 만드는 강렬함이 있다. – 바리 코스키
바리 코스키는 이번 프로덕션에서 의도적으로 그로테스크한 스타일을 연출 방향으로 잡았다. 그는 도둑단의 두목 팔사카파를 영화 <핑크 플라밍고>에 나오는 드랙 퀸 ‘디바인(Divine)’을 연상시키는 인물로 그려 내었고, 무대 위의 도둑들은 하이힐에 화려한 복장을 하고 등장시켰다. 이처럼 시각적으로 파격적이고 현대적인 접근은 오펜바흐의 풍자극을 21세기적 감수성으로 재해석한 시도로 다가왔다.
안토니오 쿠엥카 루이즈의 대사 각색 역시 이번 프로덕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오늘날의 정치 현실을 비꼬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소 과한 풍자와 직설적인 표현이 원작의 은유적인 맛에 비해 앞선 감이 없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지만, "50살에 롤렉스 시계 하나 없으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대사에 담긴 유머는 최근 프랑스 내각과 사회 분위기를 날카롭게 풍자하며 파리 관객들의 즉각적인 웃음과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며 전폭적인 공감을 샀다.
이번 무대에서 가장 주목받은 연기자는 도둑단의 두목 역을 맡은 마르셀 비크만이다. 드랙 퀸으로 묘사된 팔사카파 역은 그를 위해 디자인된 역할임이 거의 자명하게 느껴졌다. 네덜란드 출신의 테너인 비크만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엑상 프로방스 페스티벌 등 오페라 분야에서 명성을 자랑하는 음악제를 비롯해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뛰어난 연극적 해석 능력을 선보이는 성악가이다. 특히 과장되고 그로테스크한 연극적 표현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라모의 플라떼(Platée)에서 주역 우스꽝스러운 두꺼비 역의 연기로 강한 존재감을 남긴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