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지지' 흑인들 뿔났다…"우리 의견도 존중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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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라고 해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익명의 공화당 지지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진짜로 자기가 말한 대로 책임감 있게 경제정책을 펼칠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민주당 지지자 재러스키 화이트)
미국 흑인 사회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여부를 두고 쪼개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흑인은 민주당을 언제나 충실히 지지하는 '집토끼'로 분류됐다. 그러나 최근엔 다르다.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들의 비중이 늘어나는 중이다. 특히 젊은 흑인 남성들 사이에서 이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일 때에 비해 '흑인'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로 지명된 후 이런 균열은 더 도드라져 보이는 중이다.
20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애틀랜타 사전투표소 등에서 만난 흑인 유권자 10여명에게 젊은 흑인 남성들에게 민주당 이탈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일부는 "과장됐다"고 했지만 대부분은 "그렇다"고 답했다. 조지아주의 흑인 유권자 비중은 30%에 달한다. 미국 전체 흑인 유권자 비율(14%)의 두 배가 넘는다. 경합주인 조지아주의 선거인단 16명의 '색깔'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크다.
지난 9월 50세 미만 흑인 남성의 4분의 1 이상이 올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NAACP)가 나온 후 흑인 사회 내 트럼프 지지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은 꾸준히 관찰되고 있다. 지난 12일 뉴욕타임스(NYT)와 시에나대가 흑인의 15%가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깜짝 놀란 민주당은 부랴부랴 흑인 남성용 공약을 쏟아내기도 했다.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흑인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젠더문제와 계급문제, 인종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9일 민주당 유세장서 만난 장애 여성 러비 씨(50)는 "솔직히 해리스가 여성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평가했다. 최근 해리스 유세에 합류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트럼프를 지지한다며 젊은 흑인 남성의 성차별 경향을 비판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일단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트럼프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많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흑인 남성은 "세금을 낮춰 주면 경기부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트럼프 경제 공약이 내 생각과 더 비슷하다"며 "흑인이 매번 민주당에만 표를 주니까 민주당도 우리를 신경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흑인 남성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마리화나 소지를 더 허용하자는 식의 민주당의 접근법이 진짜 그들에게 좋은 것인지 회의하는 시각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흑인 남성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지지해 온 정당이 더 이상 그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좌절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범한 흑인 남성과 민주당 지도층 간의 계급적인 차이도 민주당 이탈 움직임의 바탕에 깔려 있다. 라손 레이 등은 지난 18일 브루킹스연구소 기고문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하버드대를 나온 사실, 해리스 부통령이 하워드대와 우수한 여학생 모임인 알파 카파 알파 소로리티 회원이었던 점 등은 흑인 남성들과의 간극을 오히려 더 벌리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흑인 남성 중 10%는 연간 최소 10만달러를 벌고, 20% 미만은 학사학위를 가지고 있다"며 "인종차별 시대에는 (흑인) 교수와 청소부가 같은 곳에 살았겠지만 이제는 사회적 계층과 네트워크가 분리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종적으로도 해리스를 '진짜 우리같은 흑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화이트 씨(41)는 "솔직히 말해서 (인도인 어머니를 둔) 해리스는 진짜 흑인은 아니고, (하와이 출신인) 버락 오바마도 아니다"며 "미셸 오바마가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흑인"이라고 했다. 다른 두 사람은 '노예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흑인 여성이나 연배가 높은 흑인 남성들은 트럼프에게 더 끌리는 젊은 흑인 남성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다. 풀튼 카운티의 사전 투표소로 지정된 플리퍼교회 앞에서 만난 한 흑인 여성은 "내 주변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고, 나는 그런 자와는 다시는 말도 섞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년의 흑인 남성인 조니 프링글씨도 "학교도 안 다닌 젊은이(흑인 남성)들이 코로나19 때 600달러를 나눠줘서 트럼프를 지지하자고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혀를 차면서 "트럼프가 되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흑인 커뮤니티 내에서 민주당 지지자의 목소리가 워낙 강하고, 트럼프 지지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젊은 흑인 남성 중에 '숨은 트럼프 지지자(샤이 트럼프)'가 예상보다 많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백인 노동자들이 주로 샤이 트럼프였던 현상이 이번에는 인종을 바꿔서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레일라 파델 NPR 팟캐스트 진행자는 "정치 문제는 종종 말다툼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젊은 흑인 남성들이 실명을 걸고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밝히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공화당 소속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에 대한 흑인 유권자의 지지율은 2018년 5%에서 2022년 12%까지 올라갔다"며 "조지아 주의 정치 균형이 미세하게 공화당 쪽으로 기울었다"고 지적했다.
애틀랜타=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진짜로 자기가 말한 대로 책임감 있게 경제정책을 펼칠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민주당 지지자 재러스키 화이트)
미국 흑인 사회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여부를 두고 쪼개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흑인은 민주당을 언제나 충실히 지지하는 '집토끼'로 분류됐다. 그러나 최근엔 다르다.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들의 비중이 늘어나는 중이다. 특히 젊은 흑인 남성들 사이에서 이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일 때에 비해 '흑인'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로 지명된 후 이런 균열은 더 도드라져 보이는 중이다.
20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애틀랜타 사전투표소 등에서 만난 흑인 유권자 10여명에게 젊은 흑인 남성들에게 민주당 이탈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일부는 "과장됐다"고 했지만 대부분은 "그렇다"고 답했다. 조지아주의 흑인 유권자 비중은 30%에 달한다. 미국 전체 흑인 유권자 비율(14%)의 두 배가 넘는다. 경합주인 조지아주의 선거인단 16명의 '색깔'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크다.
지난 9월 50세 미만 흑인 남성의 4분의 1 이상이 올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NAACP)가 나온 후 흑인 사회 내 트럼프 지지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은 꾸준히 관찰되고 있다. 지난 12일 뉴욕타임스(NYT)와 시에나대가 흑인의 15%가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깜짝 놀란 민주당은 부랴부랴 흑인 남성용 공약을 쏟아내기도 했다.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흑인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젠더문제와 계급문제, 인종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9일 민주당 유세장서 만난 장애 여성 러비 씨(50)는 "솔직히 해리스가 여성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평가했다. 최근 해리스 유세에 합류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트럼프를 지지한다며 젊은 흑인 남성의 성차별 경향을 비판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일단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트럼프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많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흑인 남성은 "세금을 낮춰 주면 경기부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트럼프 경제 공약이 내 생각과 더 비슷하다"며 "흑인이 매번 민주당에만 표를 주니까 민주당도 우리를 신경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흑인 남성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마리화나 소지를 더 허용하자는 식의 민주당의 접근법이 진짜 그들에게 좋은 것인지 회의하는 시각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흑인 남성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지지해 온 정당이 더 이상 그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좌절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범한 흑인 남성과 민주당 지도층 간의 계급적인 차이도 민주당 이탈 움직임의 바탕에 깔려 있다. 라손 레이 등은 지난 18일 브루킹스연구소 기고문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하버드대를 나온 사실, 해리스 부통령이 하워드대와 우수한 여학생 모임인 알파 카파 알파 소로리티 회원이었던 점 등은 흑인 남성들과의 간극을 오히려 더 벌리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흑인 남성 중 10%는 연간 최소 10만달러를 벌고, 20% 미만은 학사학위를 가지고 있다"며 "인종차별 시대에는 (흑인) 교수와 청소부가 같은 곳에 살았겠지만 이제는 사회적 계층과 네트워크가 분리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종적으로도 해리스를 '진짜 우리같은 흑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화이트 씨(41)는 "솔직히 말해서 (인도인 어머니를 둔) 해리스는 진짜 흑인은 아니고, (하와이 출신인) 버락 오바마도 아니다"며 "미셸 오바마가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흑인"이라고 했다. 다른 두 사람은 '노예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흑인 여성이나 연배가 높은 흑인 남성들은 트럼프에게 더 끌리는 젊은 흑인 남성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다. 풀튼 카운티의 사전 투표소로 지정된 플리퍼교회 앞에서 만난 한 흑인 여성은 "내 주변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고, 나는 그런 자와는 다시는 말도 섞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년의 흑인 남성인 조니 프링글씨도 "학교도 안 다닌 젊은이(흑인 남성)들이 코로나19 때 600달러를 나눠줘서 트럼프를 지지하자고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혀를 차면서 "트럼프가 되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흑인 커뮤니티 내에서 민주당 지지자의 목소리가 워낙 강하고, 트럼프 지지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젊은 흑인 남성 중에 '숨은 트럼프 지지자(샤이 트럼프)'가 예상보다 많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백인 노동자들이 주로 샤이 트럼프였던 현상이 이번에는 인종을 바꿔서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레일라 파델 NPR 팟캐스트 진행자는 "정치 문제는 종종 말다툼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젊은 흑인 남성들이 실명을 걸고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밝히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공화당 소속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에 대한 흑인 유권자의 지지율은 2018년 5%에서 2022년 12%까지 올라갔다"며 "조지아 주의 정치 균형이 미세하게 공화당 쪽으로 기울었다"고 지적했다.
애틀랜타=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