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유산과 사산으로 태어나지 못한 아이가 4만 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사산아 비율은 25.43%로, 최근 10년 만의 최고치다. 유전학적 요인뿐 아니라 청년층의 늦은 사회 진출과 만혼으로 인한 고령 출산이 최근 유·사산아 비율을 크게 높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늘어난 고위험 산모…올해 4만명이 유·사산

10년간 유·사산아 100만 명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유산아는 3만9295명, 사산아는 121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출생아(11만5559명)의 34.1%에 달하는 3만9416명이 유산 또는 사산된 것이다.

유산은 수정란이 산모 자궁에 착상했지만 임신 기간 기준으로 20주가 안 된 상황에서 태아가 사망해 자궁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뜻한다. 임신 20주 이후에 사망한 아이를 분만하는 것은 사산이라고 한다. 여기서 유산은 인공 임신중절(낙태)을 제외한 수치다.

임신 자체가 감소하면서 유·사산아는 줄고 있다. 2013년 11만280명이던 유·사산아는 2017년(9만8554명) 10만 명 아래로 떨어진 뒤 2023년엔 7만7037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유·사산아를 유·사산아와 출생아의 합으로 나눈 유·사산아 비율은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유·사산아 비율은 2013년 20.65%에서 2017년 21.87%로 올랐고, 2020~2022년 24%대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는 2013년 이후 최고치인 25.43%에 달했다.

의료 전문가들은 유·사산율 상승의 원인 중 하나로 고령 출산을 꼽는다. 정윤지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산모가 고령이면 자궁벽에 태반이 형성돼 안착하는 과정이 순조롭지 않을 수 있다”며 “유전자 돌연변이 위험성이 커져 유산이나 사산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첫째 아이를 낳은 산모 연령은 지난해 만 33.0세로, 10년 전인 2013년(30.7세)보다 2.3세 상승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고위험 산모로 분류되는 35세 이상 산모 비중은 지난해 36.3%로 10년 전(20.2%)보다 크게 확대됐다.

“취업과 결혼·출산 앞당겨야”

정부는 올해부터 고위험 임신부를 대상으로 소득과 관계없이 의료비를 지원하고, 비급여 약제인 유산방지제 일부를 급여화하는 등 다양한 지원대책을 내놓고 있다. 유·사산은 유전학적 요인도 있기 때문에 정부의 산전 대책만으로 100% 예방하기는 어렵다. 한 번의 유산이 출산 포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 전반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에서 초기 임신부가 눈치를 보지 않고 산전 검진 등 의료 서비스를 받고 근로시간 단축 제도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늦어지는 취업과 결혼, 출산을 앞당길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는 2022년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한 살 앞당기는 방안을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추진했다가 거센 반발이 일자 관련 논의를 중단하기도 했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청년층의 일자리 경쟁 심화 등으로 사회 진출과 결혼, 출산이 미뤄지고 있는 만큼 청년층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의 구조적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허세민/박상용/이우상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