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풀듯…오선지에 풀어나간 선율…과학도, 작곡도, 답을 찾아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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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 과학도에서 유명 작곡가로
현대음악 작곡가 김택수
국제화학올림피아드 韓 대표로 은메달
서울대 화학과 졸업후 돌연 작곡과 편입
"음악 할 때는 할 일들이 쉼 없이 떠올라"
현대음악 작곡가 김택수
국제화학올림피아드 韓 대표로 은메달
서울대 화학과 졸업후 돌연 작곡과 편입
"음악 할 때는 할 일들이 쉼 없이 떠올라"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은메달을 따고 서울과학고 졸업 이후 서울대 화학과를 다니던 그는 20대 초반까지 삶의 길이 명확하게 정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문득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질문에 휩싸였다.
“화학을 공부할 땐 아무리 고민해도 앞으로 이걸로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음악을 할 때만큼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쉼 없이 떠올랐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작곡과 수업을 하나둘 청강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 서울대 작곡과로 편입한 뒤 ‘작곡가의 길을 걸어도 되겠다’고 확신했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그는 2011년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애나대 음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샌디에이고주립대 교수로서 미국과 유럽 명문 악단이 끊임없이 찾는 현대음악 작곡가가 됐다. 2021년 국제적 권위의 미국 버를로우 작곡상을 받은 김택수 작곡가(44)의 이야기다.

올해 7회를 맞은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에서 그의 신곡 ‘네 대의 바이올린과 타악기를 위한 협주곡(with/out)’이 아시아 초연된다. 2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엔 프랭크 황 뉴욕 필하모닉 악장, 데이비드 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악장, 다니엘 조 함부르크 필하모닉 악장, 앤드루 완 몬트리올 심포니 악장 등이 참여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실내악단인 세종솔로이스츠가 김 작곡가에게 위촉한 작품으로 올해 5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세계 초연됐다.
그는 “이번 곡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한 건물(아파트)에 모여 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철저히 고립된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전보다 많은 사람과 가깝게 연결돼 있으나 더 강한 고독감을 느끼는 현대인과 매우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 작곡가는 이번 작품에서 세 개 악장을 통해 ‘현시대의 사회적 거리’에 관한 고찰을 담아냈다.

현대음악은 보통 난해하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의 작품은 듣기 어렵지 않다. 일상에서 소재를 찾고 유머러스한 요소를 충실히 활용한다. 한국 특유의 정서를 담은 작품도 여러 개다. “찹쌀떡!” “메밀묵!” 같은 정겨운 소리가 그대로 등장하는 합창곡 ‘찹쌀떡’, 옛날 국민체조 구령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선율이 녹아 있는 ‘국민학교 환상곡’ 등이 그렇다. 국악과 클래식 간 융합도 김 작곡가 작품에선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영감이 대단한 경험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특별한 것 없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리 한 음, 생각 한 줄에서 나의 아이디어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같은 일상이라도 남들과 조금은 다른, 외국인에게 신선하게 느껴질 만한 경험이 무엇일지 고민했는데, 언제나 그에 대한 답은 ‘한국에서의 추억’이었어요. 한국에서 겪은 소중한 경험, 호소력 짙은 국악을 향한 끝없는 궁금증은 앞으로도 영감의 귀중한 원천이 될 것 같습니다.”
그에게 작곡가로서 최종 목표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작곡이란 반복해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시작도 끝도 제가 결정할 수 있죠. 그래서 거창한 꿈을 꾸기보다는 언제 뒤돌아봐도 스스로 떳떳한 작품을 남기는 걸 목표로 삼고 싶어요. 지쳐 쓰러질지언정 조금의 후회도 남지 않도록요.”
김수현 기자/사진=구본숙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