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임시현, 알고 보니 '활수저'…'임난수 장군' 후손이었다 [2024 파리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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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올림픽에서 양궁 단체전, 혼성전, 개인전까지 3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3관왕에 오른 임시현(한국체대·21)이 '고려의 명장' 임난수 장군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임시현의 금메달 소식이 알려진 후 세종시 곳곳에는 "부안임씨 임시현 선수 금메달"이라는 축하 현수막이 곳곳에 걸렸다.
부암 임씨 후손이 대다수 회원인 세종장남번영회는 '임시현 선수 양궁 여자 단체전 금메달 획득, 장하다 세종의 딸' 현수막을 내걸었고, 류제화 국민의 힘 세종시 갑 당협위원장도 '부안임씨 세종의 손녀 임시현 선수 양궁 금메달'이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을 세종시 곳곳에 걸었다. 부암 임씨는 고려말 최영 장군과 함께 왜구 토벌에 큰 공을 세운 임난수 장군의 후손이다. 임난수 장군은 650년 전인 고려 공민왕 23년(1374년) 화살을 사용해 왜구와 싸우면서 전투 중 오른팔이 잘리자, 화살통에 잘린 팔을 넣고 계속 싸운 일화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후 세종은 임난수 장군의 충심을 높이사 '불천지위'(큰 공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로 모시도록 명했다.
조선이 건국된 후 '불사이군'(不事二君,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이라며 고향인 전북 부안으로 이동하던 중 연기군 양화리에 터를 잡았으며 이후 600여 년이 넘도록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뤄 살았다. 임시현의 할아버지도 젊은 시절까지 연기군에 거주하다가 이후 임시현 선수의 아버지가 3살 무렵 강릉으로 이사를 갔으며 이후 강릉에서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임시현 선수의 큰아버지 등 일가친척들은 이후에도 계속 세종시에 남아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등학교 재학 중 양궁을 시작한 임시현은 2022년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된 후 그해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이번 파리 올림픽까지 개인전, 단체전, 혼성 단체전까지 금메달을 석권하며 '신궁'으로 불리고 있다. 양궁 종목 세계 최초로 아시안 게임, 올림픽에서 모두 3관왕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로 기록되고 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임시현의 금메달 소식이 알려진 후 세종시 곳곳에는 "부안임씨 임시현 선수 금메달"이라는 축하 현수막이 곳곳에 걸렸다.
부암 임씨 후손이 대다수 회원인 세종장남번영회는 '임시현 선수 양궁 여자 단체전 금메달 획득, 장하다 세종의 딸' 현수막을 내걸었고, 류제화 국민의 힘 세종시 갑 당협위원장도 '부안임씨 세종의 손녀 임시현 선수 양궁 금메달'이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을 세종시 곳곳에 걸었다. 부암 임씨는 고려말 최영 장군과 함께 왜구 토벌에 큰 공을 세운 임난수 장군의 후손이다. 임난수 장군은 650년 전인 고려 공민왕 23년(1374년) 화살을 사용해 왜구와 싸우면서 전투 중 오른팔이 잘리자, 화살통에 잘린 팔을 넣고 계속 싸운 일화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후 세종은 임난수 장군의 충심을 높이사 '불천지위'(큰 공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로 모시도록 명했다.
조선이 건국된 후 '불사이군'(不事二君,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이라며 고향인 전북 부안으로 이동하던 중 연기군 양화리에 터를 잡았으며 이후 600여 년이 넘도록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뤄 살았다. 임시현의 할아버지도 젊은 시절까지 연기군에 거주하다가 이후 임시현 선수의 아버지가 3살 무렵 강릉으로 이사를 갔으며 이후 강릉에서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임시현 선수의 큰아버지 등 일가친척들은 이후에도 계속 세종시에 남아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등학교 재학 중 양궁을 시작한 임시현은 2022년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된 후 그해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이번 파리 올림픽까지 개인전, 단체전, 혼성 단체전까지 금메달을 석권하며 '신궁'으로 불리고 있다. 양궁 종목 세계 최초로 아시안 게임, 올림픽에서 모두 3관왕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로 기록되고 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