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나간 삼성 카메라 있어요?"…2030 싹쓸이한다는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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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빈티지 카메라 '열풍'
최근 '중고 디지털카메라' 전성기
세운상가·남대문시장·동묘 등 각광
취향 따라 화질 안 좋을수록 인기
"시대 흐름 체감하기 가장 쉬운 물건"
"새로운 경험과 동시에 향수 자극하는 매개체"
최근 '중고 디지털카메라' 전성기
세운상가·남대문시장·동묘 등 각광
취향 따라 화질 안 좋을수록 인기
"시대 흐름 체감하기 가장 쉬운 물건"
"새로운 경험과 동시에 향수 자극하는 매개체"

세운상가에서 음향·영상 기기를 취급하는 가게를 운영하는 '신승전자'의 김한기(54) 씨는 이같이 말했다. 전문 촬영 장비를 다루는 이 가게 구석에는 오래된 휴대용 디지털카메라들이 전시돼있다. 대부분 2000년대 초반에 출시됐던 제품이다. 2016년 카메라 사업을 완전히 접은 삼성의 디지털카메라도 보였다.
김 씨는 "우리 가게는 음향 장비, 영상 장비 납품이 주력 사업"이라면서도 "최근에는 '빈티지 카메라 있냐'며 가게를 방문하는 젊은 친구들이 꽤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동 안 되는 1만원짜리부터 캐논 등 인기 브랜드의 '풀세트(배터리, 메모리 카드, 충전 케이블이 모두 들어있는 구성)'는 20만원대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지는 'Y2K(세기말)' 열풍을 타고 최근 세운상가 중고 카메라 가게들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20~30대가 중고 카메라를 찾아서다.
"틱톡 보고" K-디카 사러 온 관광객

세리 씨는 "여행 중 틱톡에 한국의 '핫플'(명소)로 떠서 구경 왔다"며 "10만~15만원대의 중고 카메라를 기념품으로 사 가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흐릿하고 뿌연 사진이 유행"이라며 "화소수가 낮은 저화질 제품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지 씨도 "세븐틴 콘서트 때문에 한국에 방문했다"며 "스마트폰 카메라보다 화질은 안 좋지만 빈티지 카메라만의 매력이 있다"며 "뉴진스도 뮤비에서 이런 빈티지 카메라를 들지 않았냐"고 말했다. 이어 "여행하는 모습을 빈티지 카메라로 담으면 추억이 될 것 같다"며 구형 디지털카메라들을 둘러봤다.
가게를 운영하는 이규태 씨는 중고 디지털카메라 매입을 통해 팔 물건을 구한다. 본체만 갖고 있더라도 충천 케이블 등을 구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매입하고 있다. 매입한 카메라의 작동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배터리와 메모리카드 등을 추가해 바로 사용할 수 있게 손 본 뒤 10만~20만원대의 가격으로 책정하고 판매하는 식이다.
이 씨는 "손님 대부분이 2030"이라면서 "과거에는 촬영 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중고 촬영 장비를 판매했는데 1~2년 전부터 휴대용 중고 디지털카메라 판매가 주력 사업이 됐다"고 전했다. 손님이 많을 땐 디지털카메라만 하루 10대도 팔린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잘 팔린다고 해서 많이 구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라며 "간간이 카메라를 팔러 오시는 손님들로부터 물건을 구해 파는 수준이라 물량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유행이 퍼지며 중고 디지털카메라의 시세도 전반적으로 오른 모양새다. 이날 세운상가를 찾은 20대 대학생 박모 씨도 "예산 10만원 내외로 살 수 있는 디카를 찾고 있다"며 "작년에는 10만원에 구매했다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오늘 둘러보니 20만원대도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에는 확실히 카메라의 색감이나 복고 '감성' 때문에 스마트폰까지도 아이폰6S, XS 등 구형 모델을 찾는 친구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화질 안 좋을수록 좋아"

세운상가 중고 카메라 가게 사장들에 따르면 디지털카메라를 찾는 2030들은 '가격 대비 뛰어난 성능'을 찾는 보편적인 소비 행태를 따르지 않는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물씬 드러낼 수 있는 화소수가 더 낮은 것이나, 초점이 잘 안 맞는 제품을 찾는다는 설명이다.
구형 카메라들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것과 관련, 전문가들은 이 카메라가 젊은 세대에게 신선한 경험이 되는 동시에 위로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현 2030에게 구형 디지털카메라는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쓰던 물건일 것"이라며 "주도적으로 사용해본 경험은 없으니 새로운 경험이 되면서, 동시에 어린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카메라와 스마트폰 등 휴대용 전자기기는 최근 20~30년간 가장 빠르게 발전한 물건 중 하나"라며 "시대의 흐름을 체감하기 쉬운 물건이라는 점에서 복고 열풍 속에서 유독 인기를 끄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