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확정되면 인수합병(M&A) 계획을 재검토하거나(44.4%) 철회·취소(8.5%)하겠다는 상장사가 절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152개 상장사를 조사한 결과다.

상법 382조3은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이 중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지만 부작용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사회가 장기적 시각에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질 수 있다. 경영 판단은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다. 단기적으론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론 회사와 주주에게 이익이라고 보고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많다. 1980년대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비롯해 국내 기업의 성장사는 이런 기업가정신의 결과였다. 그런데 이런 결정에 따라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는 주주들이 ‘이사회가 주주 이익에 충실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한다면 장기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는 오히려 주주 이익에 반할 수 있다.

실제 주주의 지분 보유 목적이 단기투자, 장기투자, 배당수익 등 제각각인 상황에서 이사회가 어떤 경영 판단을 하든 일부 주주는 불만을 가질 수 있고 그 결과 소송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상법 개정 시 상장사들이 M&A를 재고하겠다고 답한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도 아니다. 영국 독일 일본 등은 이런 조항 자체가 없다. 미국도 24개 주가 따르는 모범 회사법은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만 규정하고 있다. 미국 일부 주의 회사법과 판례에 ‘회사 및 주주’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이는 ‘회사에 이익이면 주주에게도 이익’이란 일반론적 의미일 뿐이란 게 학계의 시각이다. 소액주주 보호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기업 구성 원리의 근간인 상법까지 건드리는 건 전형적 소탐대실이다. 게다가 집중투표제, 감사분리선출제, 쪼개기 상장 규제 등 대주주 중심 경영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