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낙산사 화재 때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선일금고. 금고에 있던 국보급 문서와 도자기 등은 멀쩡했다.
2005년 낙산사 화재 때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선일금고. 금고에 있던 국보급 문서와 도자기 등은 멀쩡했다.
2005년 4월 6일, 강원 양양군에서 발생한 산불이 천년고찰 낙산사를 집어삼켰다. 보물 479호인 동종이 완전히 녹아내릴 정도로 거센 화마였다.

하지만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금고는 멀쩡했다. 겉은 심하게 그을렸지만 금고에 있던 국보급 문서와 도자기 등은 멀쩡한 상태였다. 경기 파주시의 한국유통, 대구 서문시장 등에 불이 났을 때도 금고에 보관했던 수천만원의 현금과 서류는 건질 수 있었다. 이들 화재를 견딘 금고는 모두 강소기업 선일금고제작이 만든 제품이다. 내화금고의 우수성이 입증된 계기다.

금고의 생명은 화재에 얼마나 견디느냐에 달려 있다. 작은 틈새로 불길이 비집고 들어가면 귀중품이 타버려 금고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난을 막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불에 견디는 내화 기능이 제대로 갖춰진 다음의 얘기다. 선일금고가 1970년대부터 수출길을 뚫은 것도 김용호 창업주가 밀어붙인 공개테스트로 내화 기능을 인정받은 덕이다. 선일금고제작은 80여 개국과 거래하고 있다.

내화금고는 밀폐된 시험로에서 927도로 가열해 한 시간, 1010도에서 두 시간 이상을 견뎌야 인정받는다. 내화재로 쓰이는 시멘트와 첨가제의 배합 기술이 관건이다. 일부 해외 인증에서는 가열된 금고를 9.1m(30피트) 높이에서 추락시킨 뒤 다시 가마에 넣어 30분간 가열해 금고 속 내용물을 점검하는 시험을 거쳐야 내화금고 자격을 부여한다.

김은영 선일금고제작 부사장은 “최소 한 시간 이상 견디면 내화금고로 인정받는데 화재 현장에서 발견되는 선일금고는 보통 세 시간 이상을 버텼다”며 “고객의 귀중품을 지킬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파주=이정선 중기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