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보수파만 출마 허용시 낮은 투표율 불보듯…정권 정통성에 타격"
"온건파 허용해 투표율 상승하면 원치 않는 결과 나올 가능성"

이란 지도부가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후임을 뽑는 대선의 문호를 어느 정도까지 개방할지를 놓고 까다로운 시험대에 올랐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게는 대선 후보군 결정과 관련,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각 선택에는 나름의 위험을 수반한다고 NYT는 짚었다.

이란 최고지도자는 대통령 인준·해임 권한은 물론 군 통수권도 갖는 등 절대 권력을 행사한다.

대통령은 권력 서열 2위로 국내 정책과 경제를 관장한다.

대선 문호 강경파에만 개방? 온건파에도?…이란 지도부 딜레마
우선, 하메네이는 강경파부터 개혁파에 이르기까지 모두 대선에 출마할 수 있게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경쟁이 치열해지고 하메네이가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아니면 최근의 선거 전략을 되풀이해 개혁주의자뿐만 아니라 야당 온건파 인사의 출마도 막을 수 있다.

이 경우 낮은 투표율이 불가피하고, 이는 하메네이의 권위주의적 통치 강화에 대한 민심의 질책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반서방 강경 보수파가 압승한 지난 3월 총선의 투표율은 41%를 다소 밑돌았다.

2016년 60%를 웃돈 총선 투표율이 2020년 42%로 뚝 떨어진 데 이어 더 낮아진 것이다.

숨진 라이시 대통령은 강경 보수파로, 이란 대선 사상 최저 투표율(48%)을 기록한 2021년 대선에서 당선됐다.

선거는 민심의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로, 최근 몇 년간 이란의 낮은 투표율은 성직자들과 정치 기득권층의 짙어지는 강경 보수 경향에 대한 이란 대중의 냉소적 분위기를 드러내는 명확한 징후로 여겨진다고 NYT는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달 대선 출마를 제한해 투표율이 낮아지면 이란 정권의 정통성에도 타격이 가해질 수 있다.

대선 문호 강경파에만 개방? 온건파에도?…이란 지도부 딜레마
이슬람 신정일치(이슬람 성직자 통치론)를 지지한 라이시 대통령은 하메네이의 잠재적 후계자로 간주돼 왔다.

이는 그가 하메네이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강압적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는데, 하메네이는 이제 지지할 뚜렷한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보수 지지층의 내분에 직면할 수 있다고 NYT는 관측했다.

미국 클렘슨대학의 역사학자 아라시 아지지는 "라이시 대통령은 예스맨이었다"며 "(이란) 정계에는 아주 큰 재정적,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많은 사람이 있다.

권력 다툼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선 후보로는 보수파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과 혁명수비대 출신으로 하메네이 충성파인 사이드 잘릴리 등이 거론된다.

유럽 싱크탱크 유럽외교협회(ECFR)의 이란 분석가 엘리 게란마예는 순조롭고 안정적인 정권 이양을 보장할 수 있는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하메네이가 대선 후보군 확대에 나서지 않게끔 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메네이가 현재 85세로 건강이 좋지 않은 만큼 결국 후계 구도를 염두에 두고 대선판을 짜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기 침체와 실업률 급증, 반정부 시위에 대한 폭력적 진압 등으로 인한 부정적 여론을 고려해 온건파의 대선 출마를 허용할 필요도 있겠지만 하메네이가 이를 선택할지는 의문이라고 NYT는 관측했다.

이란 대선은 다음 달 28일 치러지며 후보 등록은 이달 28일 마감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