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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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C와 샤프, 소니, 도시바, 파나소닉, 히타치제작소, 후지쯔, 미쓰비시전기.

한때 일본 경제를 이끌었던 ‘종합전기 8사’다. 이제 일본에서 종합전기라는 말은 거의 사라졌다. TV와 반도체, PC로 각축을 벌이며 승승장구하던 이들 8사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치며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2008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 히타치의 대규모 적자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 8사의 명암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인프라’의 히타치와 ‘엔터’의 소니는 부활


2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 15년 동안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기업은 히타치다. ‘거함’이라 불리던 히타치는 다양한 사업구조를 정리했다. 22개에 달하던 상장사는 전부 사라졌다. 2023회계연도 순이익은 5899억엔(약 5조원)으로, 2008회계연도 당시 역대 최대 규모였던 7873억엔의 적자에서 완벽히 부활했다.

히타치의 매출은 약 10조엔으로 15년 전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조정 후 영업이익률 8%를 기준으로 엄선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췄다. ‘그린’과 ‘디지털’을 사업 영역으로 삼은 것이 가장 큰 변화다. 고지마 게이지 사장은 “지금까지 구조개혁 성과를 살려 유기적 성장으로 기업가치를 향상해 나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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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히타치를 순이익으로 넘어선 것이 소니다. 소니는 2010년대 초반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게임과 음악,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중심으로 균형 잡힌 이익을 거두고 있다. 2023회계연도 순이익은 9706억엔을 기록했다. 도토키 히로키 사장은 “이익 창출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다음 중기 계획에서는 시너지 효과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 인프라’를 지향하는 히타치와 엔터테인먼트로 승부수를 던진 소니.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이는 두 회사의 공통점은 일찌감치 자사의 강점을 명확히 정의하고 비핵심 사업의 개혁에 나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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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익 車부품 정리한 파나소닉과 미쓰비시

소니와 히타치에 이어 2023회계연도에 나란히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한 파나소닉(4440억엔)과 미쓰비시전기(2849억엔)도 다시 날개를 펴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수익성이 낮은 자동차 부품 등에서 사업 개혁에 나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파나소닉은 자동차 부품 자회사를 미국 투자펀드에 매각했다. 미쓰비시전기는 자동차 부품 사업을 분사해 외부와 협업을 용이하게 했다.

제조업에서 정보기술(IT)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한 후지쯔(2545억엔)와 NEC(1495억엔)도 오랜 기간 흑자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고객사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수요 확대가 견조한 수주로 이어지고 있다. 후지쯔는 반도체 기판을 다루는 신광전기공업의 매각을 결정하는 등 IT를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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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헤매는 도시바와 샤프

반면 아직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경영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도시바(-748억엔)와 샤프(-1500억엔)다. 양사 모두 2023회계연도 적자 발표에 맞춰 개혁책을 내놨다.

도시바는 지난해 12월 상장폐지하고 투자펀드인 일본산업파트너스(JIP) 산하에 들어가 근본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짜고 있다. 이 회사는 2024회계연도를 ‘재도약의 해’로 정하고 인력 감축 등 성장을 위한 경영 기반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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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는 2016년 대만 홍하이정밀공업(폭스콘)의 자회사로 편입된 뒤 일시적으로 실적이 개선됐다. 그러나 액정 중심의 사업 구조는 그대로 유지됐다. 2023회계연도에도 액정 시황에 휘둘려 적자를 기록했다. 뒤늦게 해당 사업의 근본적인 개혁에 착수한 모양새다.

과거 종합전기 8사의 현재 사업 내용을 들여다보면 경쟁 관계에 있는 사업은 급격히 줄었다. 더 이상 종합전기 8사로 부를 수 없게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8사의 15년을 추적하면 경영의 차이가 드러난다”며 “2023회계연도에서 벌어진 격차는 역대 경영진의 변화에 대한 의지가 짙게 반영돼 있다”고 분석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