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기아 본사.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기아 본사. 사진=연합뉴스
현대자동차 미국 법인(HMA)이 노조 리스크에 직면했다.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공장 내 4000명의 근로자들은 이르면 다음달 미국 내 산별노조인 전미자동차노조(UAW)에 가입할 지 여부를 놓고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2005년 미국에 제조 공장을 지은 이래 올해까지 무노조 경영을 해왔다.

13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몽고메리 공장 근로자들은 UAW 가입을 위한 동의 서명 접수를 진행 중이다. 폭스바겐이 지난달 미국 내 외국 자동차 업체로는 처음으로 UAW에 합류한 것이 기폭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UAW에 가장 먼저 가입한 폭스바겐은 지난해 12월 노동자 30% 이상의 동의를 얻었고, 넉달 후인 지난달 19일 찬반 투표를 거쳐 가입을 가결했다.

현대차보다 한달 앞선 지난 1월 노동자 30% 이상이 노조 가입 의사를 밝힌 메르세데스-벤츠는 이날부터 UAW 합류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시작했다. 투표는 17일까지다. 앨라배마주 2개 공장에서 일하는 5000여명의 노동자들이 대상이다. 통상 가입 의사 표명 이후 동의 여부를 묻는 투표까지 4개월이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 역시 다음달 UAW 가입을 묻는 투표를 시행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에 이어 도요타 노동자들도 UAW 가입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UAW는 지난해 전례 없는 동시 파업을 벌인 끝에 4년간 25%의 임금 인상안을 끌어냈다. 현대차는 UAW와 동일한 임금인상을 약속하는 등 미국 노동자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UAW 합류가 결정되려면 근로자 70%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HMA 노조 결성을 추진하는 이들은 “현대차의 미국 내 수익이 지난 3년간 75% 증가했고, 차량 가격이 32% 상승했으나 근로자의 임금 복리 후생이 뒤처지고 있다"며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로선 HMA가 미국 공장의 노조 설립을 반대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대선을 앞두고 노동계 표심을 공략 중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UAW를 전격 지원하고 있어서다. 또 UAW는 지난해 말 HMA 등 3개 회사가 노조 결성을 무력화하고 있다며 전미 노동관계위원회(NLRB)에 신고하는 등 회사 측을 압박하고 있다.

현대차가 미국에서 노조를 결성하게 되면 그동안 최대 장점이었던 노동유연성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미국 완성차 '빅3'가 있는 디트로이트와 달리 외국계 완성차가 밀집한 미국 남서부 ‘선벨트’는 전통적으로 노조 활동에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지역이다. 현대차는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성을 높여 북미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북미 시장에서 성공은 현대차가 세계 3위 완성차 업체로 자리 잡게 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현대차 노조가 UAW에 가입하면 미국 자동차 제조사 '빅3'처럼 UAW와 산별 교섭을 벌여야 한다. 또한 차종 생산량을 조절할 때마다 노조와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해 민첩하게 시장에 대응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차는 올해 한국에서도 노조와의 험난한 협상이 예상된다. 현대차 노동조합은 상여금 900% 인상과 금요일 4시간 근무제 도입, 전년도 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등을 회사 측에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폭스바겐을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선 만큼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노조의 요구는 더욱 확대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