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에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본사.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인천 송도에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본사.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은 모두 인천 송도에 있습니다. 1~4공장은 이미 돌리고 있고, 5공장은 내년 4월 준공이 목표입니다. 계획 상으로는 8년 뒤 8공장까지 짓는 것이 목표입니다. 물론 모두 인천 송도 얘기입니다.

그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생산시설 확보를 위해 물밑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미국 생산시설을 확보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공장을 새로 짓거나, 아니면 기존에 있던 공장을 사들이는 겁니다.

삼성은 두 가지 방법을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있지만 사실상 후자로 기울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바카빌 공장 인수를 검토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론자보다 먼저 美 바카빌 공장 검토했던 삼성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론자보다 먼저 인수를 검토했던 미국 바카빌 생산시설 위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론자보다 먼저 인수를 검토했던 미국 바카빌 생산시설 위치.
미국 정부는 갈수록 ‘자국 내 생산’ 기조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배터리 뿐 아니라 바이오의약품도 미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산하라는 겁니다. 여기에 미중갈등이 바이오산업으로 번지면서 미국에 진출해야 할 또다른 이유가 생겼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쟁사였던 중국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우시바이오로직스가 미국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중장기적으로 우시 고객을 삼성의 고객으로 데려올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입장에선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다른 글로벌 대형 제약사(빅파마)들 역시 미국 내 생산시설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3월 글로벌 CDMO 1위 기업 론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바카빌에 있는 33만L 규모의 항체 위탁생산(CMO) 공장을 사들였습니다. 하지만 론자보다 먼저 이 바카빌 공장에 눈독들인 기업이 있었습니다. 바로 삼성바이오로직스입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론자보다 발빠르게 검토한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바카빌 생산시설이 너무 오래돼서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습니다. 론자와 가격 싸움에서 진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또다른 삼성 내부 관계자는 “비딩싸움에서 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포기한 것”이라며 “옛날부터 시설적 결함이 있는 조금씩 있었던 공장으로 알고 있으며, 그 공장을 사서 업그레이드 시킬 바에는 차라리 새로 짓거나 다른 매물을 보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업계 안팎에 따르면 바카빌 설비는 지은 지 20여년 정도 된 공장입니다. 앞으로 항체뿐 아니라 항체약물접합체(ADC), 세포·유전자치료제(CGT) 등 차세대 바이오의약품 생산까지 염두에 둔 삼성바이오로직스 입장에선 오래된 공장을 사서 설비까지 보완하는 것은 부담이 됐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앞서 론자는 약 1조6000억원을 들여 바카빌 공장 인수를 결정했습니다.

바카빌 공장은 원래 스위스 제약사 로슈의 소유였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로슈는 바카빌 공장 외에도 캘리포니아에 오션사이드 설비를 하나 더 갖고 있는데, 해당 공장은 좀 더 최신식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업계 안팎에서 매력적으로 보고 있는 매물 중 하나입니다.

격화되는 미중갈등 속 중장기 호재 노려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정부는 우시 등 중국 바이오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생물보안법을 준비하고 있고, 여기에 미국 산업기반 강화를 골자로 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압력도 가해지고 있는 만큼 미국 진출의 필요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중갈등도 주요 요인중 하나입니다. 미국 상원 국토안보위원회는 지난 3월 생물보안법을 통과시켰고, 외신에 따르면 미국 하원위원회는 오는 7월 휴회 전에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바이오협회 회원사였던 우시는 협회를 탈퇴하기로 결정했고,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박람회인 ‘바이오 USA’에도 불참한다고 밝혔습니다.

미중갈등은 오는 미국 11월 대선 결과와 상관 없이 계속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대다수입니다. 미국은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조가 삼성바이오로직스에게는 중장기적 호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우시가 맡고 있는 물량 중에는 비만약 ‘마운자로’의 원료가 포함돼있는 등 대어급 수주 계약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 미국바이오협회가 회원사를 대상으로 중국 CDMO에 대한 의존도를 조사한 결과, 무려 79%의 기업이 ‘중국에 기반을 두거나, 중국이 소유한 제조업체와 1개 이상의 계약을 맺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그 계약들이 모두 다른 CDMO의 몫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삼성도 포함입니다.

미국바이오협회는 바이오 기업들이 제조 파트너를 바꾸는 데 최대 8년까지도 걸릴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일부 하원의원들은 2032년까지 중국 바이오기업과 기존에 맺은 계약도 종료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미국 제약전문매체 엔드포인트가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오랜 기간이 걸리는 의약품 개발 특성상 이 기한(8년)은 긴 시간이 아니다”라며 “기존 계약뿐 아니라 신규 계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이 해외 박람회 등에서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해외공장 건설 및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왔고, 여기에 더해 최근 공격적인 행보도 포착된만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미국 진출 ‘큰 그림’이 조만간 빛을 발하길 기대합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