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희망이다] "완도를 제주처럼 멋지게"…피어싱한 20대 여성 이장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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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용암리 이장 김유솔 씨, 최연소 여성 이장…"이장이 뭐하는지도 몰랐는데, 벌써 3년차"
마을 주민 대부분 70~80대 어르신…"최장수 이장이 목표, 기타 치는 히피 할머니 되고 싶어"
[※편집자 주 = 지방에 터를 잡고 소중한 꿈을 일구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젊음과 패기, 열정으로 도전에 나서는 젊은이들입니다.
자신들의 고향에서, 때로는 인연이 없었던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새로운 희망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 청년의 존재는 인구절벽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사회에도 큰 힘이 됩니다.
연합뉴스는 지방에 살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청년들의 도전과 꿈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합니다.
] "제 꿈요? 완도를 제주도처럼 멋진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
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남 완도군 완도읍 용암리 경로당에서 만난 김유솔(27) 이장의 꿈은 당찼다.
코에 피어싱한 김 이장은 스치는 바람에도 웃음이 터지는 발랄한 20대다.
기자를 만나러 경로당으로 나온 김 이장은 팽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어르신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눴다.
김 이장 덕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는 최순희(84) 할머니는 손녀를 보듯, 김 이장의 손을 잡고 "너무 예쁘제"라며 다독거렸다.
경로당 옆 카페에서 열리는 한글 교실로 어르신들을 안내한 후에야 김 이장은 비로소 기자와 인사를 나눴다.
"어르신들요? 다들 저를 딸이나 손녀처럼 대해주세요.
정말 고마운 분들이죠"
김 이장은 수줍게 웃으며 말문을 뗐다.
완도에서 태어난 김 이장은 완도 수산고 3학년 때인 2014년 서울에 올라가 사진관과 디자이너 회사에서 일을 했다.
여느 20대처럼,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고 휴가 때 해외여행도 가는 등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서울이 자기 집이라 생각했지만, 늘 주변에서는 명절만 되면 "완도에 안 가냐?"고 물었다.
"한 2년은 완도에 내려오지 않았는데, 한번 가볼까 하고 왔더니 제주도처럼 예쁜 거예요.
항상 낙후한 시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말이죠."
서울에서의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하철만 타면 답답했다.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변하는 대도시의 삶에 맞추려면 많은 것을 봐야 했고, 알아야 했다.
주변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로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완도가 생각이 나 내려왔고, 예쁜 바다에 반해버렸다.
김 이장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완도에 와서 곧바로 사진관을 열었다.
2019년 3월 봄이었다.
김 이장이 사진관을 열게 된 것은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고향 친구들은 '완도에는 사진관이 없는데, 네가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사진관이 있던 건물 1층 칵테일바 사장과 친해져 도시재생 관련 일도 시작했다.
2021년 말 도시재생센터에서 함께 일하던 전직 이장이 용암리 이장직을 제안했다.
뜬금없다고 생각했지만, 김 이장은 선뜻 용기를 내 도전했고 만장일치로 뽑혔다.
그의 나이 스물 네살이었다.
"제가 이장이 되려고 마음먹었던 것 보다 이장을 제안하신 게 더 신기했어요.
이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벌써 3년 차가 됐어요"
김 이장은 이장이 되고 나서 용암리로 이사왔다.
처음에는 이웃 주민이 무상으로 집을 빌려줬고, 지금은 월세를 내고 있다.
김 이장이 일하는 용암리는 80가구에 50여명이 살지만 대부분 70∼80대 어르신들이다.
이장의 중요한 업무는 어르신들의 복지 혜택을 꼼꼼하게 챙기는 일이다.
목욕비, 난방비, 문화누리카드 등 각종 지원금부터 형광등 교체 등 소소한 집안일까지 두루 살펴야 한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이장의 업무인지 몰랐어요.
손에 잡히면 다 일이었어요.
힘들 때면 마을회장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김 이장은 지역 청년들과 함께 '완망진창'을 만들어 벼룩시장도 열고 해변에서 쓰레기도 줍는 봉사활동도 펼치고 있다.
2022년에는 전남형청년마을사업에 선정돼 빈집을 활용하는 한 달살기 프로그램도 열었다.
전국에서 온 20∼30대 청년 6명이 지냈는데 이 가운데 3명이 완도에 정착했다.
김 이장의 꿈은 '최장수 이장'이다.
꿈은 계속 바뀔 수 있지만, 완도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다.
"완도는 재료는 많은데 다듬어지지 않은 것들이 많아요.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더 많은 친구가 완도로 오고 싶게 만들고 싶어요.
목표는 최장수 이장인데요.
전자기타 치며 뜨개질하는 히피 할머니로 늙고 싶어요"
/연합뉴스
마을 주민 대부분 70~80대 어르신…"최장수 이장이 목표, 기타 치는 히피 할머니 되고 싶어"
[※편집자 주 = 지방에 터를 잡고 소중한 꿈을 일구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젊음과 패기, 열정으로 도전에 나서는 젊은이들입니다.
자신들의 고향에서, 때로는 인연이 없었던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새로운 희망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 청년의 존재는 인구절벽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사회에도 큰 힘이 됩니다.
연합뉴스는 지방에 살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청년들의 도전과 꿈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합니다.
] "제 꿈요? 완도를 제주도처럼 멋진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
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남 완도군 완도읍 용암리 경로당에서 만난 김유솔(27) 이장의 꿈은 당찼다.
코에 피어싱한 김 이장은 스치는 바람에도 웃음이 터지는 발랄한 20대다.
기자를 만나러 경로당으로 나온 김 이장은 팽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어르신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눴다.
김 이장 덕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는 최순희(84) 할머니는 손녀를 보듯, 김 이장의 손을 잡고 "너무 예쁘제"라며 다독거렸다.
경로당 옆 카페에서 열리는 한글 교실로 어르신들을 안내한 후에야 김 이장은 비로소 기자와 인사를 나눴다.
"어르신들요? 다들 저를 딸이나 손녀처럼 대해주세요.
정말 고마운 분들이죠"
김 이장은 수줍게 웃으며 말문을 뗐다.
완도에서 태어난 김 이장은 완도 수산고 3학년 때인 2014년 서울에 올라가 사진관과 디자이너 회사에서 일을 했다.
여느 20대처럼,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고 휴가 때 해외여행도 가는 등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서울이 자기 집이라 생각했지만, 늘 주변에서는 명절만 되면 "완도에 안 가냐?"고 물었다.
"한 2년은 완도에 내려오지 않았는데, 한번 가볼까 하고 왔더니 제주도처럼 예쁜 거예요.
항상 낙후한 시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말이죠."
서울에서의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하철만 타면 답답했다.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변하는 대도시의 삶에 맞추려면 많은 것을 봐야 했고, 알아야 했다.
주변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로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완도가 생각이 나 내려왔고, 예쁜 바다에 반해버렸다.
김 이장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완도에 와서 곧바로 사진관을 열었다.
2019년 3월 봄이었다.
김 이장이 사진관을 열게 된 것은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고향 친구들은 '완도에는 사진관이 없는데, 네가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사진관이 있던 건물 1층 칵테일바 사장과 친해져 도시재생 관련 일도 시작했다.
2021년 말 도시재생센터에서 함께 일하던 전직 이장이 용암리 이장직을 제안했다.
뜬금없다고 생각했지만, 김 이장은 선뜻 용기를 내 도전했고 만장일치로 뽑혔다.
그의 나이 스물 네살이었다.
"제가 이장이 되려고 마음먹었던 것 보다 이장을 제안하신 게 더 신기했어요.
이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벌써 3년 차가 됐어요"
김 이장은 이장이 되고 나서 용암리로 이사왔다.
처음에는 이웃 주민이 무상으로 집을 빌려줬고, 지금은 월세를 내고 있다.
김 이장이 일하는 용암리는 80가구에 50여명이 살지만 대부분 70∼80대 어르신들이다.
이장의 중요한 업무는 어르신들의 복지 혜택을 꼼꼼하게 챙기는 일이다.
목욕비, 난방비, 문화누리카드 등 각종 지원금부터 형광등 교체 등 소소한 집안일까지 두루 살펴야 한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이장의 업무인지 몰랐어요.
손에 잡히면 다 일이었어요.
힘들 때면 마을회장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김 이장은 지역 청년들과 함께 '완망진창'을 만들어 벼룩시장도 열고 해변에서 쓰레기도 줍는 봉사활동도 펼치고 있다.
2022년에는 전남형청년마을사업에 선정돼 빈집을 활용하는 한 달살기 프로그램도 열었다.
전국에서 온 20∼30대 청년 6명이 지냈는데 이 가운데 3명이 완도에 정착했다.
김 이장의 꿈은 '최장수 이장'이다.
꿈은 계속 바뀔 수 있지만, 완도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다.
"완도는 재료는 많은데 다듬어지지 않은 것들이 많아요.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더 많은 친구가 완도로 오고 싶게 만들고 싶어요.
목표는 최장수 이장인데요.
전자기타 치며 뜨개질하는 히피 할머니로 늙고 싶어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