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증권시장의 큰 관심사였던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정책 방향이 가시화됐다. 증시의 해묵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부동산에 쏠린 가계 자산을 주식 쪽으로 돌려 국부를 키우자는 담대한 시도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된 유인책은 많이 아쉽다. 기업에서 체감할 만한 당근책은 없고, 자칫 또 하나의 규제거리만 덧대는 꼴이 될 수 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그제 제시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은 기본적으로 공시 강화다.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수익비율(PER) 자기자본이익률(ROE) 배당성향 등 전통적 재무지표의 중장기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행 방안을 수립하라는 것이다. 지배구조 개선안 같은 비(非)재무지표도 내놔야 한다. 방식은 ‘자율 공시’지만 유인책으로 꼽혀온 세제 혜택이 빠지면서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업이 시큰둥해하는 것에는 일리가 있다. 무엇보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내놓은 뒤 이게 경영의 족쇄로 작용하거나 자칫 ‘공시 미이행 기업’으로 낙인찍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한국은 자율적 가이드라인을 가장한 규제가 유난히 많은 나라다. 더욱이 불안정한 국제 정세 등 국내외 경영 환경 변화가 너무 커 재무지표의 중장기 설정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대기업이 아닌 경우 공시·IR 담당 인력을 갖춘 곳도 많지 않다. 그럴듯하게 공시를 대신해줄 컨설팅·회계법인 일감이나 늘려주기 딱 좋게 됐다. ‘자율 이상’의 밸류업 공시 활성화와 실효를 꾀하려면 법인세 경감 같은 구체적 인센티브도 필요하다. 당장 줄어드는 세수를 보면 어려울 수 있지만 자산·자본시장 활성화와 그에 따른 세수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근본적으로 한국 증시의 밸류업은 기업 혁신과 신성장산업 육성에 달렸다. 주가 상승의 동력은 기업 실적과 펀더멘털이다. 자사주 소각으로 주식 가치를 올리라는 주장도 있지만 경영권 방어의 안전판이 없는 상황에선 의미가 없다. 일부 당국자는 ‘주주환원 지표’까지 만들겠다며 주먹까지 휘둘렀지만 그런다고 오를 주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