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테이프를 MP4 파일로 변환해 USB에 저장
수십년된 결혼식·돌잔치·회갑연 모습 되살려
강서구, 장례 서비스에도 도입하는 방안 검토
[인턴액티브] 아련해진 추억들…디지털로 돌려 드려요
"25년 전 가족과 찍은 비디오를 서른이 된 자식과 같이 보며 웃을 수 있네요.

"
지난 9일 오전 9시 42분께 서울시 강서구 강서50플러스센터 지하 1층 편집실 책상 위에는 손때가 묻은 비디오테이프, 캠코더용 8㎜ 테이프, 손가락 하나 크기의 작은 이동형 저장장치(USB)가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21년 전에 찍은 테이프에는 1990∼2000년대 초 '그때 그 시절'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결혼식 비디오에는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짙은 분홍색 볼 화장을 한 신부, 장발에 금색 뿔테 안경을 쓴 남성 하객 등 지금과는 사뭇 다른 과거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다른 테이프들에는 대가족이 모인 식사 시간, 음식을 빼곡하게 쌓은 옛날 돌잔칫상, 스마트폰이 아닌 캠코더로 유치원 재롱잔치를 찍는 학부모 등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여행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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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50플러스센터는 지난 2월 말부터 시민들이 집에 소중하게 보관해두면서도 기술적인 어려움 때문에 꺼내 보지 못하던 비디오테이프를 MP4 파일로 변환해서 USB에 담아주는 '추억의 비디오테이프 디지털 변환 서비스'를 시작했다.

오래전에 찍은 영상을 작은 장치에 담아 간편하게 보관하고 재생할 수 있어 센터를 찾는 주민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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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개 넘는 비디오테이프를 가진 신향순(60)씨는 지난 3월에 이어 4월에도 센터를 찾았다.

양이 많다 보니 격주로 센터를 들러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신 씨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캠코더로 영상을 많이 찍었는데 집에 있는 비디오 플레이어가 고장 난 뒤로는 보지 못했다.

고쳐보려고도 했지만 오래된 기종이라 수리해 주는 곳도 없었다"며 "이 서비스를 통해 비디오테이프를 USB에 담아 언제든지 돌려볼 수 있다.

테이프가 공간만 차지하는 것 같아 버릴지 고민했는데 버리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변환한 영상을 가족과 같이 봤는데 잊고 있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남은 비디오테이프도 가족이 그리울 때 열어 볼 수 있는 디지털 앨범으로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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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과 가족여행을 찍은 비디오테이프 3개를 들고 센터를 찾은 김만석(65)씨는 "비디오 플레이어는 있지만 테이프를 재생하려면 복잡하니 안 보게 됐다.

그런데 센터에서 USB만 가져오면 컴퓨터에서 볼 수 있게 바꿔준다고 해서 왔다"면서 "당시에 애들이 어려서 어릴 적에 어땠는지 모를 텐데 가족이 모여 보면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센터 관계자는 "중장년 사업을 담당해 보니 50대 이상 어르신 중에는 비디오테이프 형태로 옛날 기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그렇게 자료를 많이 갖고 있어도 볼 수 없었다.

요즘에는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기계를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주민분들이 수십 년 전 소중한 기록을 쉽게 볼 수 있도록 이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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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를 이용한 시민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3월 한 달만 해도 15명이 센터를 찾았다고 한다.

부모님의 결혼식, 자녀의 유치원 재롱잔치나 운동회, 칠순 잔치 등 가족의 얼굴이 담긴 비디오가 주로 들어온다.

박정희(57)씨는 "정말 좋은 일 하신다"며 센터 측에 거듭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박 씨는 "자식들이 모두 해외에 살고 있어 온라인 화상 통화로만 가족을 만날 수 있다.

비디오테이프를 같이 보고 싶어도 컴퓨터에 연결이 안 돼서 볼 수가 없었다"며 "디지털 파일로 바꿔 저장해두면 멀리 있는 가족들에게도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으니 편하다.

곧 가족 모임인데 아이들에게 얼른 영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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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특성상 주요 이용자는 50∼60대였지만, 이 서비스를 시작하며 30대∼40대 주민들의 발길도 늘고 있다.

생전 부모님의 모습,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가족의 그리운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센터를 찾은 한 방문객은 "부모님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찾았지만 가지고 있어도 틀 수가 없어 아쉬웠는데 이제는 볼 수 있게 되어 좋다"고 말했다.

사업을 기획한 강현숙 강서50플러스센터 팀장은 "기회가 된다면 비디오 변환 서비스를 새로운 장례 문화로 확장하려고 한다.

지금의 장례식은 고인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부모님이 어땠는지도 모른 채 영정 사진만 세워두는 경우가 많다"며 "결혼식에서 영상을 트는 것처럼, 장례식에서도 옛날 비디오 영상을 보면서 돌아가신 분을 추억하고 생전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