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UAE에도 밀렸다…'AI 뿌리기술' 개발 못한 韓
생성형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날씨 정보 솔루션을 개발하는 국내 스타트업 A사는 최근 자사 서비스에 사용할 대규모언어모델(LLM)을 변경했다. 미국 메타의 라마2에서 중국 알리바바의 LLM인 큐원-72B로 바꿨다. 둘의 성능이 비슷하지만 큐원-72B가 더 쓸모 있다는 판단에서다. A사 대표는 “한국에는 쓸 만한 LLM이 아직 없고 해외 LLM이 한국어도 꽤 잘 처리한다”고 말했다.

핵심 AI 기술 개발 못하는 한국

해외에서 핵심 AI 기술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고객이 만족할 만한 AI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선 국내 기술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16일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HAI)의 ‘AI 인덱스 2024’ 보고서에 따르면 생성 AI의 바탕 기술인 파운데이션 모델, 중요 머신러닝 개발 등의 지표에서 한국은 글로벌 경쟁력이 없는 국가로 분류됐다.

미국이 고성능 머신러닝 기술 개발에서 지난해 61개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다음은 중국(15개) 프랑스(8개) 독일(5개) 캐나다·이스라엘·영국(4개) 싱가포르(3개) 등의 순이었다. 아랍에미리트와 이집트도 각각 3개와 2개를 개발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은 한 건도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네이버 등 국내 기업 성과는 빠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머신러닝 기술은 양질의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의 기반이 된다. 오픈AI의 GPT4와 같은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려면 고성능 머신러닝 기술로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런 결과가 의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동안 국내 정보기술(IT)기업들이 앞다퉈 AI에 거액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AI 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10년(2013~2023년) 동안 국내 기업의 AI 관련 투자액은 72억5000만달러(약 10조1202억원)로 세계 9위 수준이었다. 한국보다 AI 개발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낸 싱가포르(62억5000만달러)보다 많았다. AI 개발에 돈을 허투루 썼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근 일부 국내 기업이 글로벌 상위권 수준의 LLM을 개발했다고 발표하기는 했다. 카카오뱅크, 뤼이드 등이 개방형(오픈소스) AI의 성능을 순위로 매기는 사이트 허깅페이스의 ‘LLM 리더보드’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 메타의 라마2, 미스트랄AI의 미스트랄7B 등 다른 업체 파운데이션 모델을 활용해 자체 기술 수준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기업 고객에 다양한 AI 솔루션을 제공한 AI 스타트업 달파의 김도균 대표는 “40여 개 파운데이션 모델을 사용하고 있지만 모두 해외 모델”이라며 “국산 모델도 써봤지만 서비스에는 적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AI 시대에도 해외에 종속되나

AI 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면서 ‘AI민족주의’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국가 간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는 지난해 11월 AI기업 ai71을 설립하고 자체 LLM인 팰컨의 고도화에 나섰다. 프랑스 AI 스타트업 미스트랄AI는 지난해 12월 4억달러(약 5574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비슷한 시기 인도 AI 스타트업 사르밤은 인도어 AI 모델 구축을 위해 4100만달러(약 571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그동안 국내 기업의 AI 투자가 적재적소에 충분히 투입되지 않았다”며 “대기업이 힘들다면 프랑스의 AI 스타트업 미스트랄AI가 최근 성과를 냈듯이 한국도 유망 AI 스타트업을 지원해 국가 AI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거액의 개발비가 필수인 AI 바탕 기술보다는 AI를 활용한 서비스 고도화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최고 성능의 LLM으로 꼽히는 오픈AI의 GPT4 개발에는 7800만달러(약 1087억원)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