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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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지난해 국내 실적을 요약하면 ‘매출 소폭 증가, 이익 감소’로 압축된다. 1조7000억원이 넘는 역대 최대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30% 넘게 줄었다. 장사는 했지만 실속이 없었다는 얘기다.

1조7000억 역대급 매출 올렸는데…이익은 '뚝'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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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명품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샤넬코리아의 매출은 1조7038억원으로 전년 대비 7% 증가했다. 반면 영업이익은 2720억원으로 34% 줄었으며 당기순이익도 2197억원으로 29% 감소했다.

매출은 늘어나는데 이익이 줄어든 것은 마케팅비를 대거 투입한 영향이 크다. 샤넬은 브랜드 및 프로모션 활동 강화를 위해 투자액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존 황 샤넬코리아 재무책임자는 "지난해 팬데믹 제한이 해제되고 시장 환경이 변화하면서 브랜드 및 인적자원에 대규모로 투자했다"며 "패션 워치 주얼리 향수와 뷰티 부문의 견고한 성과는 맞춤형 고객 경험을 강화하기 위한 헌신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백화점 샤넬 쇼윈도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의 한 백화점 샤넬 쇼윈도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스1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마케팅을 위한 광고선전비 등 비용이 크게 늘었다. 광고선전비(480억원)와 판매촉진비(1182억원)는 전년보다 각각 37.9%, 29.5% 증가했다. 샤넬은 가수 지드래곤과 블랙핑크 제니 등 한류 스타나 SNS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광고를 노출시키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고용 규모도 적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991년 국내 법인을 세운 샤넬은 작년 말 기준으로 1865명을 고용하고 있다. 전년(1574명)보다 300여명가량을 더 고용했다. 경쟁업체로 꼽히는 에르메스코리아의 직원 수(427명)보다 네 배 이상 많다. 판관비 중 종업원 급여 분야가 965억원으로 작년(796억원)보다 21% 넘게 불었다.

오픈런 줄고…재고 쌓이네

지출은 늘었는데 재고가 쌓이면서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면도 있다.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 명품 성장세가 주춤한 탓이다. 샤넬코리아의 재고자산회전율은 2022년 말 9.74회에서 지난해 8.87회로 떨어졌다. 재고자산회전율은 매출원가를 재고자산으로 나눈 것으로, 기업이 보유한 재고자산을 판매하는 속도를 측정하는 지표다. 재고자산회전율이 낮다는 것은 재고가 팔리는 속도가 느려 창고에 오랫동안 재고자산이 쌓여 있고, 재고자산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의 한 백화점 샤넬 쇼윈도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의 한 백화점 샤넬 쇼윈도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스1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증가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물량을 늘렸지만 경제 하락 사이클이 두드러지면서 오히려 과공급으로 인한 문제가 생기고 있는 셈이다. 인기 제품이 중국시장에 집중되면서 국내 소비자들이 정작 원하는 물건을 사기 어렵다는 점도 재고 관리 효율성을 떨어뜨린 것으로 분석된다.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중국시장이 한국보다 3~4배가량 크기 때문에 중국을 타깃으로 인기 제품을 우선적으로 많이 배정한다”며 “상대적으로 한국에는 주요 품목이 덜 들어오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사고 싶은 물건과 매장에서 파는 상품 사이에 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명품업계에선 달라진 수요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팬데믹 기간 보복 소비로 호황기를 누렸지만 앞으로는 성장세가 주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침체 여파가 소비자 지갑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 데다 그나마 소비 수요가 엔화가 저렴한 일본 등의 여행으로 대체되는 모습이라는 분석이다. 백화점 마다 성행하던 명품 ‘오픈런’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으며 리셀시장에서도 가격 조정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초고가 브랜드만 선별적으로 잘 나가는 양극화 현상도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어중간한 가격대의 매스티지(대중) 명품은 덜 팔리고 하이엔드 브랜드는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고물가·고금리에 소비 여력이 줄었지만 상위계층이나 부유층 소비자들의 소비지출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샤넬도 VIP 타깃 공간을 증설하거나 하이엔드 마케팅에 공을 들이는 등 수요 변화에 대응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