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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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식시장에서 주요 주주의 갑작스러운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로 개인 투자자가 손실을 떠안는 경우들이 늘고 있다. 호재성 소식이나 테마주로 엮여 주가가 급등한 이후 대주주가 갑자기 팔아버리는 식이다. 문제는 최대주주나 특수관계인 등이 블록딜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를 목적으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주주들이 팔아치우는 작은 수준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보니 시장에서 회사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흐르면서 주가도 하락하고 있다. 이는 회사를 철석같이 믿고 비교적 장기투자를 했다가 주가 반등으로 '이제 빛을 보나' 싶었던 소액주주들과 호재를 보고 뛰어들었던 개인투자자(개미)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최근에는 흥아해운이, 직전에는 알테오젠이 블록딜 문제로 개미들의 속을 끓였다.

흥아해운, 최대주주 장금상선 블록딜로 1400만주 매각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2일 흥아해운은 600원(16.09%) 급락한 3130원에 거래를 마쳤다. 최대주주인 장금상선이 지난 11일 블록딜로 흥아해운 주식 1400만주(지분율 5.82%)를 매각했다고 장마감 이후 공시한 영향이다. 주당 매도가는 2997원이다.

흥아해운은 최근 중동 지역의 군사적 불안이 커지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시리아에 있는 영사관을 폭격당한 이란이 보복을 예고하던 가운데,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가능성까지 내비치면서다. 흥아해운의 주요 사업은 케미컬 탱커로 위험성이 커짐에 따라 운임도 동반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1일 2640원이었던 주가는 블록딜이 알려지기 직전인 11일 3730원까지 올랐다. 단기간 주가상승률이 41.2% 에 달한 셈이다.
흥아해운의 케미컬 탱커 / 사진=흥아해운 홈페이지
흥아해운의 케미컬 탱커 / 사진=흥아해운 홈페이지
장금상선이 흥아해운 지분을 매도한 것은 2021년 흥아해운 인수 후 처음이었다. 시장 안팎에서 주가 상승으로 인한 차익을 노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장금상선 측이 내세운 블록딜의 이유는 "유통주식수가 적어 이슈에도 주가 변동성이 커지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실제 블록딜 이후에도 장금상선이 보유한 흥아해운의 지분율은 79.03%에 달한다. 블록딜 이전에는 84.85%였다.

급등 이후 블록딜로 개인들은 대규모 손실을 떠안은 걸로 추정된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지난 1~12일 개인은 흥아해운 주식 350만2500주(금액 119억3600만원)를 순매수했다. 평균 매수가는 3567원다. 12일 종가와 비교하면 12.25%의 손실을 기록 중이다.

외국인은 지난 11일 흥아해운 주식 1412만9100주를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난다. 대부분이 장금상선이 매각한 물량으로 추정된다. 중동 이슈로 흥아해운 주가가 급등하던 이달 1~9일에는 19만4600주를 팔았다. 그러다 11일 종가(3730원) 대비 19.65% 할인된 가격에 나온 대주주 매물을 사들인 뒤 12일엔 340만5300주(111억4100만원)를 팔아치웠다.

기관은 흥아해운의 급등락 과정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달 들어 12일까지 5900주(8억7600만원)를 순매도해 평균 2.22%의 수익 기회를 놓쳤다.

부인이 블록딜 해버린 알테오젠…화천기계는 급등 계기로 승계 수월

앞서 블록딜로 개미들을 애태웠던 종목은 알테오젠과 화천기계가 있다. 알테오젠은 올해 들어 바이오섹터에서 이목을 끌며 주가가 급등했다. 면역항암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를 판매하는 MSD에 정맥주사 제형의 바이오의약품을 피하주사 제형으로 바꾸는 기술 라이선스를 비독점적으로 제공하기로 했던 계약을 독점 계약으로 변경한 영향이었다.

알테오젠 최고경영자(CEO)인 박순재 대표의 배우자로 함께 회사를 창업한 정혜신 박사는 블록딜로 지분을 전격적으로 매각했다. 지난달 27일 보유지분이 기존 201만6000주(지분율 3.85%)에서 41만6000주(0.78%)로 줄었다고 공시했다. 알테오젠 주가는 공시 당일부터 지난 5일까지 8거래일동안 26.65% 급락했다.
알테오젠 본사 및 연구소 전경 / 자료=한경DB
알테오젠 본사 및 연구소 전경 / 자료=한경DB
공시 전까지 알테오젠은 급등하던 중이었다. 정혜신 박사의 블록딜 소식이 전해지기 직전인 지난달 26일 종가(21만9500원)는, MSD와의 계약 변경이 공시되기 직전인 2월21일 종가(9만3900원)와 비교해 한달 남짓 기간 동안 133.76% 급등한 수준이었다.

회사측은 "박순재 대표는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 없다"며 "오랜기간 동안 정혜신 박사가 나이가 들어 더 늦기 전에 사회에 유익한 활동을 하기 위해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은 부부이자 공동창업자인 이들의 제각각 행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화천기계는 이른바 ‘조국 테마주’로 분류돼 총선 국면에서 급등했다. 조국혁신당이 창당된 이후 지난달 25일까지 85.96%나 주가가 급등했다. 화천기계는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와 같은 미국 버클리대 로스쿨 출신 인사가 예전에 감사위원을 맡았다는 이유로 조국 테마주로 분류됐다.

그러나 예외는 없었다. 주가가 급등하니, 지난달 26일 화천그룹의 권영열 회장과 형제들은 보유지분을 모두 팔았다고 밝혔다. 지분을 사들인 건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화천기공이다. 권 회장은 지분을 팔면서 화천기공과 화천기계의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 자리는 권 회장의 장남인 권형석 신임 대표가 채웠다.

시장 안팎에서는 "권 회장의 형제들이 순순히 지분을 판 이유는 당시 화천기계 주가의 급등으로 보인다"며 "화천기계, 화천기공의 경우 주가 급등 덕에 대주주 일가의 승계가 손쉽게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전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