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미 헤지펀드 메이슨 국제투자분쟁 결과…"한미 FTA '공정대우' 의무 위반"
엘리엇 때도 '국민연금 의결권 책임→국가귀속' 논리…법무부 "면밀분석해 대응"
438억 배상 판정 이유는…"삼성 합병에 정부개입, 국가책임"
이른바 '삼성 합병'을 문제 삼아 미국 헤지펀드가 낸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정부가 일부 패해 배상하게 된 배경에는 청와대 등이 공공기관인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개입한 것이 '국가의 조치'이고 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법무부는 12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런 내용이 담긴 전날 중재판정의 주요 쟁점별 판단 결과를 공개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중재판정부는 전날 메이슨 캐피탈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한국 정부가 약 438억원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 연결되는 주요 이슈라는 평가를 받았던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승인 과정에서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의사 결정에 정부가 부당하게 관여했는지, 그게 국가 책임의 대상인지가 주된 요소다.

중재판정부는 청와대와 복지부 관계자 등이 합병 승인 과정에서 국민연금 의사결정에 개입한 행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국가가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로서 한국 정부에 귀속되므로 국가 책임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우리 정부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주주로서 순수한 상업적 행위에 불과해 국가의 조치로 인정하기 어렵고, 국민연금 투자위원회가 중장기적 수익성을 고려해 독립적으로 심의·표결한 것이므로 중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사건과 취지가 비슷해 '쌍둥이'로 불리는 '엘리엇 사건'의 중재판정부도 작년 6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책임이 한국 정부에 귀속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 사건 중재판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 등의 형사재판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를 인정해 한국 정부가 FTA 상 '최소기준 대우 의무'(외국인 투자에 대한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를 보장하는 것)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또 정부의 개입 행위로 인해 합병이 승인됐다고 보고 정부 개입과 메이슨의 삼성물산 주식 관련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손실 예측 가능성을 인정했다.

다만 중재판정부는 합병이 부결됐다면 실현됐을 것으로 예상하는 삼성물산의 주식 가치(잠재적 내재가치)가 아닌 실제 주가를 기준으로 손해액을 산정해야 한다는 정부 주장은 받아들였다.

한국 정부가 삼성전자 주식과 관련한 손해도 배상해야 한다는 메이슨 주장에 대해선 손해의 존재, 범위, 인과관계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지연이자 등을 제외한 배상 원금(3천200만달러·약 438억원)은 메이슨이 청구한 금액의 약 16%에 해당한다.

'엘리엇 사건'의 인용률인 7%보다 높다.

법무부는 "엘리엇 사례에선 국내 상법상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등을 통해 엘리엇이 보상받은 부분이 손해액 산정에 고려됐으나 메이슨의 경우 합병 발표 후 삼성물산 주식을 취득해 주식매수청구권이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국민 세금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 대리 로펌 및 전문가들과 함께 판정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판정문 수령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이 사건의 법정 중재지인 싱가포르 법원에 중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앞서 메이슨은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한 결과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주가가 하락해 약 2억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2019년 중재를 신청했다.

중재판정부는 전날 우리 정부에 3천200만달러와 5% 상당의 지연이자, 법률 비용 등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모두 합치면 8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