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봄 사이, 절기가 오묘한 경계를 타기 시작하면 따뜻한 곳이 유독 그리워진다. 봄기운 가득한 창원에서 새 계절을 재촉해 맞이했다.
[월간미식회] 입안 가득 봄, 창원
서울에서 SRT를 타고 창원중앙역까지 3시간. 그새 계절이 바뀌었나 싶을 만큼 따스한 공기가 몸을 감싼다. 이렇듯 온화한 남해의 기후는 창원 향토 밥상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마산만과 진해항을 중심으로 한 해산물이 대표적이다. 앞에 ‘마산’이 붙은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아귀찜부터 전국 출하량의 70%를 차지하는 고현마을 미더덕, 전어·광어·도다리·방어 등 제철 생선을 활용한 활어회, 밑반찬으로 그만인 멸치젓·호래기(꼴뚜기의 경남 방언)젓·갈치속젓 등 싱싱한 바다 먹거리가 가득하다.

창원 옛 장터를 중심으로 발달한 국밥도 빼놓을 수 없다. 돼지·소머리·선지 등을 푹 우려낸 깊은 맛이 향수를 자극한다.

평화식당

평화식당의 아귀불고기. 사진=정균
평화식당의 아귀불고기. 사진=정균
창원 마산합포구(옛 마산시)에서 시작돼 이제는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여겨지는 마산아귀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인기 없던 마른 아귀에 콩나물·파·전분가루·고춧가루 등을 넣어 조리해 먹은 것이 유래다.

한층 특별한 아귀 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이곳의 아귀불고기를 추천한다. ‘아귀에 육고기를 더한 걸까?’라는 의문도 잠시, 빨간 양념장에 재운 아귀를 맵싸하게 구운 요리가 상 위에 오른다.

맛을 설명하자면 아귀찜의 상위호환 버전, 농축된 양념을 모아 긁어먹는 맛이랄까. 약불로 불고기 양념을 자작하게 졸여가며 즐기면 된다.
후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볶음밥. 맵싸한 아귀불고기 양념과 잘 어울린다. 사진=정균
후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볶음밥. 맵싸한 아귀불고기 양념과 잘 어울린다. 사진=정균
KICK! 볶음밥
극강의 감칠맛을 자랑하는 이 양념에 밥을 볶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김 가루에 부추·깨 등 소박한 재료가 더해졌을 뿐인데 왜 이리 고소한지.

개성순대

취재를 위해 자료조사를 하며 개성식 순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이 생소한 개성순대를 창원에서 만날 줄이야. 개성순대는 돼지 선지를 빼고 살코기와 다양한 채소를 만두소처럼 넣어 만든 순대다. 특유의 돼지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아 순대를 선호하지 않는 이들도 거부감 없이 맛볼 수 있다.
고기와 다양한 채소를 넣어 만든 개성식 순대. 사진=정균
고기와 다양한 채소를 넣어 만든 개성식 순대. 사진=정균
사골육수에 통들깨와 들깻가루, 콩나물, 버섯, 깻잎이 듬뿍 들어가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을 자랑하는 순대전골과 입안 가득 담백한 맛이 차오르는 순대모둠이 대표 메뉴. 일반 찹쌀순대에 비해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해 씹는 즐거움까지 완벽하다.

KICK! 양념장 5종
경상도식(막장), 전라도식(초장), 충청·강원도식(새우젓), 수도권식(소금+고춧가루), 와사비기름장 등 5종 양념장이 제공되니 다채로운 조합을 시도해볼 것

동부회센타

창원 바다에서 나는 횟감의 싱싱함이야 설명하면 입만 아프지만, 이 신선한 해산물들을 저렴한 가격에 맛보고 싶다면? 답은 동부회센타다. 어마어마한 건물 규모에 일단 압도되는데, 1층엔 활어회센터가, 2~3층엔 갓 뜬 회를 맛볼 수 있는 좌석이 마련돼 있다.

가성비 좋은 횟집으로 소문난 곳답게 관광객·현지인 할 것 없이 북적이지만, 규모가 커 회전율이 높으니 잠깐의 대기는 감수할 것.
활어회센터를 갖춰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동부회센타. 사진=정균
활어회센터를 갖춰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동부회센타. 사진=정균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회를 소량으로도 구매할 수 있단 사실이다. 적게는 500g부터 대(大) 사이즈까지 선택지가 다채롭다. 전어·방어·새우·도다리 등 각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메뉴가 가득하다.

KICK! 셀프바
소주 시키며 괜스레 눈치 보던 날들이여 안녕. 주류를 포함한 모든 음료는 원하는 만큼 가져다 마신 뒤 한 번에 계산하면 된다.

두레박식당

현지인에게도 인기 있는 맛집인 두레박식당. 사진=정균
현지인에게도 인기 있는 맛집인 두레박식당. 사진=정균
창원에는 예로부터 시장을 중심으로 국밥을 취급하는 가게가 많았다. 오랜 전통만큼 현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국밥집이 즐비한데, 두레박식당도 그중 하나다. 무려 6회나 획득한 ‘블루리본 스티커’(맛집 안내서를 내는 블루리본 서베이가 인정하는 맛집)와 오픈 전부터 대기하다가 감자탕을 포장해 가는 현지인 모습이 이곳의 맛을 증명한다.

뼈해장국은 여느 집처럼 걸쭉하지 않고 맑다. 시래기나 우거지 대신 배추와 콩나물이 들어가는 것 또한 특징. 덕분에 국물이 텁텁하지 않고 깔끔해서 개운한 맛을 자랑한다. 워낙 인기가 좋아 재료가 소진되면 조기 마감을 할 수 있으니 미리 확인할 것.
후추를 더해 칼칼하게 맛봐도 좋다. 사진=정균
후추를 더해 칼칼하게 맛봐도 좋다. 사진=정균
KICK! 후추 톡톡
시원한 맛도 좋지만, 강한 풍미의 국물이 취향이라면 후추를 살짝 더해보자. 깔끔함 매운맛에 칼칼함이 배가돼 한국인 입맛에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