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X가 지난해 10월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의 발사 단지에서 스타링크 위성 22기를 발사하고 있다. 한경DB
스페이스X가 지난해 10월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의 발사 단지에서 스타링크 위성 22기를 발사하고 있다. 한경DB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제공하는 위성 인터넷 서비스인 스타링크를 필요로하는 러시아군과 수단 반군 등에게 접속 단말기를 제공하는 중개상들이 급증하고 있다. 스타링크가 글로벌 전장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우려도 함께 커지는 중이다.

실제 올해 들어 텔레그램 등을 통해 러시아와 예멘 수단 등 미국의 제재를 받는 국가에서 스타링크 사용이 크게 늘고 있다는 증언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장에선 스타링크 사용량이 갑자기 늘면서 인터넷 속도가 느려졌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단말기 사서 러 군에 배송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시아 온라인 소매 플랫폼에서 스타링크 단말기를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개상들은 중앙아시아, 두바이 또는 동남아시아의 암시장, 미국 등에서 스타링크 단말기를 구입한 뒤 러시아로 밀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러시아 군대에 단말기를 공급하는 구조다.

스타링크는 스페이스X가 개발한 민간용 인터넷 통신 위성 체계다. 수천 대 이상의 상업용 초소형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띄워 인터넷을 연결한다. 스타링크는 웹 사이트를 통해 사용자가 단말기 키트를 받으면 몇 분 안에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키트 안에는 평평한 흰색 안테나, 라우터 및 케이블이 포함되어 있다. 앱을 다운로드만 하면 스타링크에 연결할 수 있을 만큼 조작이 쉽다. 현재 스페이스X가 띄운 위성은 약 5700개이며 공식 가입자는 약 270만명이다.

러시아군은 정식 가입자는 아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지난 2월 “스타링크 단말기가 러시아에서 사용 인증을 받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공급되지도 않아 사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가 스타링크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인터넷 통제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들에게 정보를 제한하려면 기존엔 기지국만 통제하면 되지만 스타링크를 사용하게 되면 통제권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기지국을 파괴했지만 우크라이나군들이 스타링크를 활용해 지휘부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드론 공격을 하는 등 강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통신망이 파괴된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 단말기를 제공해 위성 인터넷 사용을 지원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군도 최근 스타링크를 활용해 전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정보총국(HUR)은 최근 텔레그램에서 “러시아가 전쟁에 사용할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단말기를 포함한 통신 수단을 아랍 국가에서 구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단 반군도 활용

WSJ 는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및 아랍에미리트에서 스타링크 단말기를 거래하는 그림자 공급망이 존재한다”며 “수천 개의 흰색 피자 상자 크기의 단말기 일부 미국의 적들과 전범 혐의자들의 손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딜러가 스타링크를 허용하는 국가에서 단말기를 등록하면 최종 사용자가 로밍 기능을 활용해 위성에 단말기를 연결한다.

같은 방식으로 수단 반군인 신속지원군(RSF)도 스타링크를 활용해 정부군과의 내전에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링크를 활용해 지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병력도 모집하는 중이다.

중개상들은 수단으로 스타링크 단말기를 보내기 전에 기기를 활성화하고, 한 달에 약 65달러에 아프리카 전역 로밍 패키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이스X 측은 이같은 의혹에 대해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다. 자사 기기 중 하나가 제재 또는 승인되지 않은 당사자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조사하고 단말기를 비활성화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머스크 또한 최근 X를 통해 “우리가 알기로는 어떤 스타링크도 러시아에 직·간접적으로 판매되지 않았다”며 자사 단말기의 러시아 판매를 부인한 바 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