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야 180석 넘으면…'거야 입법 폭주→대통령 거부권' 반복된다
총선은 국지전의 총합이다. 유권자는 254개 선거구 중 자신이 속한 한 개 선거구에서 투표할 뿐이지만, 이 같은 표가 모여 확정되는 여야의 전체 의석수는 개헌부터 대통령 탄핵까지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야권의 승리가 예상되는 가운데 가장 큰 관심사는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어느 정도의 의석수를 획득하는지다. 범야권 의석이 150석, 180석, 200석을 넘는지에 따라 각 당의 국회 내 권력의 크기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野 180석 여부가 1차 관심

관심은 범야권이 180석 이상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쏠리고 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합쳐서 180석 이상을 확보하면 지난 2년간 국회에서 벌어진 ‘거야(巨野)’의 입법독주가 재연된다.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을 통해 여당이 반대하는 법안도 강행 처리할 수 있는 최소 의석수가 180석이기 때문이다. 개별 상임위원회에서도 5분의 3 이상의 의원을 획득하게 돼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할 수 있다.
범야 180석 넘으면…'거야 입법 폭주→대통령 거부권' 반복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지만 민주당이 여전히 법안 처리를 요구하고 있는 파업조장법, 방송3법, 양곡관리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이 다시 한번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21대 국회와 비슷하지만 강행 처리 법안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을 앞두고 지지자를 결집해야 하는 데다, 법안의 국회 부의를 결정하는 국회의장직에 조정식 의원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 강성 친명(친이재명)계 인사가 선출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반면 국민의힘이 120석 이상을 획득하면 야권의 법안 강행 처리 건수는 크게 줄어들게 된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50인 미만 사업자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등 주요 정책 추진은 어렵다.

與 100석 미만 땐 개헌 가능

여권 일각에서 우려하는 바대로 국민의힘 의석수가 100석 미만까지 떨어지면 국정 운영과 관련된 권한이 상당 부분 야권에 넘어간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도 국회 재투표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통해 재의결해 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파업조장법 등 거부권에 막혔던 법안들이 시행될 수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2대 국회에서 처리를 공언하고 있는 채상병 사망 사건 특검법도 처리돼 윤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가 이뤄진다. 신재생에너지 지원 강화와 민주화유공자법 등 정부와 여당이 강하게 반대하는 법안도 처리될 전망이다.

200석은 개헌과 대통령 탄핵안 처리가 가능한 의석수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8년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도입하고, 경제민주화 관련 조항에 ‘상생’ 성격을 강화한 개헌안을 내놓았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사회권을 강화한 개헌을 이번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대표도 지난해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한 바 있다.

국민의힘, 깜짝 과반 얻는다면

집권 후반기에 접어드는 윤석열 정부가 힘을 받으려면 국민의힘이 단독 과반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예상되는 의석수보다 20~30석 이상을 더 얻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정부는 상속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기업투자 활성화 관련 법안 등 쟁점 법안의 국회 통과를 시도할 수 있다. 예산안 처리와 주요 각료 임명도 지금보다 매끄럽게 이뤄질 수 있다. 다만 야권도 만만치 않은 의석을 확보하는 만큼 개별 법안 처리 과정에서 일정 부분 양보는 불가피하다.

여당에 대한 윤 대통령의 장악력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 총선 승리를 이끈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입지가 강화돼 차기 대선주자로 급부상하면 당내 세력이 한 위원장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경목 기자/사진=최혁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