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의대 증원 문제로 두 달 가까이 갈등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의사과학자 양성’이 그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미국 국빈 방문 기간에 보스턴을 찾아 바이오 석학들에게 의과학자 육성에 대해 조언을 들었다. 연말에는 한덕수 총리가 ‘제1차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를 주재하며 “5년 후부터 매년 의대 졸업생의 3% 이상을 의과학자로 배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이오산업을 제2의 반도체로, 국가 핵심 전략산업으로 키우기로 한 이상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아직은 의대 증원 문제에 발목이 잡혀 한 발짝도 못 내딛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이번에 의대 정원을 2000명이나 늘리겠다고 한 것은 지역·필수의료 붕괴의 다급성도 있지만 의사 수가 증가하면 바이오헬스산업 성장을 이끌 의과학자 지망자도 그만큼 늘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의과학자 배출은 연 30명 수준이다. 의대 정원의 1%에 그치는 셈이다. 의료서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연간 2600조원 규모의 바이오헬스 분야에선 세계적 경쟁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이유다. 의료 선진국은 이미 1970년대부터 의과학을 키워왔고 미국은 매년 1700명이 넘는 의과학자를 배출하고 있다.

의료와 공학의 융합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이웃 일본에선 손꼽히는 명문 국립대인 도쿄공업대와 도쿄의과치과대가 올 10월 통합해 ‘도쿄과학대’로 새출발한다. 세계는 빠르게 변하는데 임상만 아는 의사, 제조업만 쳐다보는 이공계생으로는 ‘끓는 물 속의 개구리’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두 학교의 합병으로 이어졌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5명이나 배출한 일본도 절박한 몸부림을 치는데 우리는 증원 숫자를 놓고 정권 퇴진까지 외치는 지경이다. 정부도 의과학자를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육성하는 문제를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난번 의대 정원 배분 때 서울대가 신청한 50명 정원의 의과학과 신설을 서울 지역이라고 뭉갠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