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의 용광로가 바로 여기! 통영 봄밤에 울려퍼진 평화의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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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 22회 통영국제음악제
음(악), 미(식), 자(연).
남도의 진정한 ‘음미자’가 되기 위해 위 세 가지만 ‘단디’ 챙기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경남 통영행은 성공적이었다.
도다리쑥국의 조화, 충무김밥의 파격, 멸치회무침의 자극, 굴밥의 포용…. 한나절 미뢰(味蕾)로 길어 올린 감각의 총화는 저녁 음악당에서 청각과 버무려져 한산대첩의 승리, 다찌의 축제로 갈무리됐으니….
통영 시내로 들어서자 진작에 피어 조용히 흐드러진 연분홍 벚꽃의 손짓 마중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열리는 제22회 통영국제음악제(3월 29일~4월 7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는 올해 J.S. 바흐의 마태수난곡(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판소리 적벽가(김일구 명창), 상주 작곡가 페테르 외트뵈시(1944~2024)의 현대작품까지 동서고금의 방대한 스펙트럼을 가로지른다.
1일 저녁, 음악당 내 블랙박스 무대에 오른 ‘밴쿠버 인터컬처럴 오케스트라’는 이 거대한 청각적 용광로의 축약판을 보여줬다. ‘inter-cultural’이라는 이름처럼 문화권 사이의 경계를 독창적으로 허문 편성과 악곡이 돋보였다.

중국 악기 솅과 얼후가 왼쪽과 오른쪽 끝을 만두 끝처럼 오므렸겠다. 그 안쪽으로는 서구의 관현악기(플루트, 클라리넷, 비올라)가 늘어섰다. 한가운데는 마치 이 괴팍한 악단에 특파된 중재자들처럼 중동 악기군(우드, 타르, 산투르)이 도톰하게 연결했으니 편제부터가 웅숭깊다. 이것이 지코(ZICO)보다 힙한 비코(VICO·Vancouver Inter-Cultural Orchestra)의 첫인상….

연주는 마른 가지에 움이 트고 마침내 꽃봉오리를 피워내는 과정을 초고속 카메라 아닌 악기라는 붓을 들고 시간의 축 위에 획으로 펼쳐내는 듯했다. 타악기는 물론이고 비올라, 얼후까지 가세한 단속적인 스타카토가 태동하듯 몇 차례 움찔대자, 곧 솅이 합세해 그 원초적 미분음들을 조금씩 조금씩 조심스레 조화로운 화성으로 분광해냈다. 음표 무더기는 한산도 앞바다 윤슬처럼 뜻 모를 반짝임으로 명멸했는데 악단 전체가 이를 맞받아 매우 동양적이되 서양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악곡으로 차츰 발전시켜 나갔다. 배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소리 풍경은 끝내 눈 앞에 펼쳐진 만화(滿花)에 반사된 따가운 햇빛처럼, 눈 대신 귀를 시큰해지게 만들었다.
공연 내내 조용한 활약을 보인 것은 중동의 류트족 악기 ‘타르’와 덜시머계 악기 ‘산투르’. 이들의 트레몰로는 중재자답게 동서양 관현악과 타악을 가만히 보듬는 특급 조연이었다. 조스캥 데프레풍(風)의 고전적 캔버스에 다문화의 팔레트를 갖다 댄 ‘시간의 애가’(파르시드 사만다리)를 비롯해 이어진 6곡은 문화의 ‘퓨전’에 그치지 않고 현대음악적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인터컬처럴’ 작품들의 탄생에 영감을 줄 만한 구성이었다.


![[좌] 매슈 맥도널드 ©EmileHolba [우] 앙투안 타메스티 ©Julien Mignot](https://img.hankyung.com/photo/202404/01.36324009.1.jpg)
연주회가 종료된 깊은 밤, 음악당 앞으로 불어오는 바다 내음을 호흡하다 문득 지금은 종영된 한 TV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전국 명소 투어 프로그램 ‘맛자랑 멋자랑’(KBS TV·1983~1989). 자랑이 더블이니 요즘 식으로 봐도 대단한 플렉스(flex)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한 며칠 통영의 맛과 멋에 만취했다. 술 한 모금 없이도 참으로 거나히.
임희윤 음악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