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장자(莊子)
고두현

성을 쌓고
문밖은 비워두라.

작은 도둑 경계하여
자물쇠 채웠거늘
큰 도적이 상자
통째로 가져가고
갈고리 훔친 자 죽은 뒤엔
나라 도둑질한 자
제후가 되다니,
저 깊은 산문 첩첩
냇물 마른 빈 골짜기
춤추는 봄나비들아
아아 눈뜨고 귀 밝은 것이
오늘의 슬픔이다.

--------------------
갈고리 도둑과 나라 도둑 [고두현의 아침 시편]
며칠 뒤면 국회의원 선거일이군요.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저마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행여 이들이 나라를 망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최선이 아니라 차선, 최악이 아니라 차악을 뽑아야 하는 기로에 설 때 우리는 곤혹스럽지요. 간혹 눈에 띄는 ‘선한 능력자’까지 이 거대한 탁류에 휩쓸리는 게 아닐까 저어됩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땐 고전을 펼칩니다. <장자(莊子)> ‘거협(胠篋)’편이 눈길을 끕니다.

‘갈고리를 훔친 자는 형벌을 받고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竊鉤者誅 竊國者爲諸侯·절구자주 절국자위제후).’

갈고리(鉤)는 쇠로 된 갈고랑이나 혁대 끝을 끼우는 단추를 뜻하니, 좀도둑이 처벌되는 것과 달리 큰 도적이 국권을 장악하는 걸 비꼰 말이지요.

이 ‘큰 도적’은 곡식을 되(升)와 말(斗)로 재게 하면 되와 말을 훔치고, 저울로 달게 하면 저울을 훔치며, 인의(仁義)로 행실을 바로잡게 하면 인의를 도적질합니다. 스스로 성(城)을 구축하기는커녕 남이 애써 쌓아 올린 성을 빼앗고 결국에는 그 성에 갇혀 버리기도 하지요.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도둑질당하지 않으려면 ‘큰 도적’을 경계해야 합니다. 방법은 무엇일까요. 장자는 “모두가 본래의 밝은 눈을 간직하면 천하가 현혹되지 않고, 본래의 밝은 귀를 간직하면 천하가 얽매이지 않고, 본래의 지혜를 간직하면 천하가 미혹되지 않고, 본래의 덕을 간직하면 천하가 치우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밝은 눈과 귀로 본래의 지혜와 덕을 실천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요. 눈 밝은 사람은 나라 걱정으로 자기 몸을 상하고, 귀 막은 정치인은 자기 걱정 때문에 나라를 망칩니다. 눈과 귀를 반듯하게 열고 세상 이치를 꿰뚫어 보는 능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정작 눈뜨고 귀 밝은 유권자는 많은데 그런 정치인이 드물다는 게 문제이지요. 눈을 크게 뜰수록 ‘눈먼 도적’들만 사방에 가득하니 더욱 씁쓸합니다.

‘선량’을 뽑는 선거 코앞의 봄날 아침, 장자의 명구를 인용한 시 한 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 봅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