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대원수’로 불린 옛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애독가였다. 하루에 300~500쪽을 읽는 열렬한 독서광이었다. 생전 2만5000여 권의 책을 모았으며, 소장한 도서들을 주제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류했다.

많은 책에 밑줄을 긋고 주해도 달았다. ‘횡설수설’ ‘동의함’ ‘옳아’ 등 여러 ‘포멧키’(pometki·표시)를 여백에 적어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드러냈다.

그는 말의 힘을 진정으로 믿었으며, 이것이 소련 사회주의의 유토피아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핵심이라고 여겼다. 또한 문자 텍스트를 숭배했다. 독서가 사람들의 의식과 사상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 자체를 변모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생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서를 삶의 이정표로 삼은 스탈린은 혁명, 대숙청, 전쟁 등 중요한 정치적 국면이 찾아올 때마다 책이 주는 교훈에 의지했다.

트로츠키, 카우츠키 등 정적(政敵)의 글도 탐독했다.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엔 수많은 ‘동의’ 표시를 남겼다. 볼셰비키의 폭력적 혁명을 비판한 카우츠키의 책엔 ‘거짓말쟁이’ ‘바보’ 등의 포멧키를 적었으나 카우츠키의 전문 분야로 인정받는 경제와 농업을 다룬 저서는 밑줄을 그으며 꼼꼼하게 읽었다.
숙청과 학살의 스탈린은 독서광이었다는데, 무슨 책을 읽었나 [서평]
소련 역사 전문가이자 스탈린 전문가인 제프리 로버츠 아일랜드 코크대 역사학 명예교수는 <스탈린의 서재>에서 “스탈린이 수십 년간 야만적인 통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그 자신이 깊이 간직한 신념에 대한 정서적 애착의 힘 덕분”이라고 했다.

저자는 전작 <스탈린의 전쟁>에서 소련의 역사와 정치, 전쟁을 통해 스탈린의 잔혹성을 탐구하면서 동시에 위대한 군사 지도자이자 전후 소련의 개혁 과정을 주도한 뛰어난 정치인의 모습을 그렸다. 이번엔 대량 학살을 일삼은 독재자의 얼굴 뒤에 숨겨진 ‘감수성이 예민한 지식인’으로서 스탈린의 면모를 담았다.

스탈린이 모은 장서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러시아 기록 보관소에 그가 작성한 400여 점의 텍스트가 남아있다. 이 기록을 토대로 저자는 그의 내밀한 생각과 신념을 드러내고자 했다.

저자는 “1920년대 초부터 스탈린은 줄곧 읽고, 쓰고, 편집하고, 텍스트에 표시하는 삶을 살아왔다”며 “한 명의 독자로서 그가 펼친 활동을 탐구하면 그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책은 스탈린 개인의 전기에 그치지 않는다. 당시 그가 읽은 책을 통해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떤 이념으로 발현됐는지, 그리고 그의 감정과 생각이 어떤 사건으로 이어졌는지 분석하며 소련사까지 폭넓게 다뤘다.

저자는 “대숙청에 대한 이해를 진전시키는 것이 이 책을 쓴 이유 중 하나”라며 “1930년대 중반에 이루진 대규모 탄압은 계급의 적과의 투쟁에 대한 이념적 차원의 신념뿐만 아니라 그의 정서에 의해 추동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금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