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승우의 지식재산 통찰] 기술 협력으로 초격차 산업 경쟁력 확보해야
“불을 피우려면 부싯돌 두 개가 필요하다.”

일을 이루려면 같은 목표 아래 협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미국과 중국은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등 최첨단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기술은 우리만의 노력으로 갖기 어렵다. 반드시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은 기업과 대학의 협력(네트워크) 현황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특허 데이터 분석을 내놓았다. 최근 10년간 특허 공동출원을 보면 한국의 ‘특허 네트워크’ 변화는 긍정적이다. 공동출원 기관 수는 19%, 네트워크 내 링크 수(3만590개)는 12.6% 늘었다. 협업 구조는 촘촘해졌고 군집화됐다. 한국 기술력이 좋아졌다는 신호다.

특허 협력은 기업 성과를 높인다. 외부와의 협업 네트워크 수와 근접성은 기업의 고용과 매출 증대, 혁신으로 이어진다. 특허 네트워크 1개가 늘면 고용은 1.6명, 매출은 4억8000만원, 특허출원은 0.4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트워크의 중심성을 보면 현대자동차는 연결성, 서울대는 근접성, 삼성전자는 가교역할(통제력)이 가장 좋다. 권역별로는 충청권과 영남권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동일 권역 내에서 공동출원이 64%로 연구 협력에서 지역적 거리가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평택 화성 용인 등 경기 남부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구축, 제주 우주산업 클러스터나 충북 첨단 바이오산업 기지 등의 형성은 협력 효과를 증대시킬 것이다. 이처럼 바이오, 화학, 자동차, 전자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첨단 분야에 기술 협력을 강화할수록 그 효과는 뚜렷해진다.

반도체는 여러 공정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제품이 완성된다. 각 공정에 적용되는 기술이 중요하지만, 이들을 조정하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 공정 간 협업이 부족한 기업은 오류가 많고 효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한 기업은 품질 불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공정 파트장이 같은 탈의실을 이용하도록 했는데, 이들이 탈의실에서 각자의 노하우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수율이 개선됐다.

우리는 협업하고 있다고 으레 생각하지만, 과도한 내부 경쟁과 평가가 협업을 방해하는 때도 많다. 그런데 우리는 대학은 대학끼리, 연구기관은 연구기관끼리만 협업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중소기업은 네트워크의 말단에 존재하고 중심성은 점차 감소했다. 그러나 대학의 허브 역할이 계속 커지고 있어 기업, 대학, 연구기관을 연결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최근 정부는 국제 공동연구와 국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문제는 ‘성과’다. 해외 기관과의 협력은 인내와 지속적 투자를 전제해야 한다. 관리·평가제도, 지식재산 확보 등도 글로벌 기준에 맞춰야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리고 국제협력은 국외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제너럴모터스(GM), 보잉, 유미코아, ASML을 비롯한 4대 반도체 장비회사 등이 연구개발(R&D) 센터 거점을 한국에 두는 사례가 늘고 있으므로, 이들과 적극적 협력을 생각해 봐야 한다.

미래 기술은 이제 혼자서 만들 수 없다. 뼛속까지 스며든 글로벌 마인드와 협력만이 이를 성공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