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49년 간 돈 벌어 '농민 예금이자' 얹어 주는 사연 [강진규의 BOK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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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의 지난해 당기 순이익이 반토막 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증권, 외화자산 등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이익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한은의 이익 대부분은 정부에 세금으로 납부하거나, 한은 적립기금으로 쌓인다.
그런데 이익 처리 내역을 자세히 살펴보면 특이한 항목이 있다. 농어가목돈마련저축 기금이다. 농민과 어민이 저축을 할 때 적용되는 예금 금리를 높여 주는 데 중앙은행의 이익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2022년 2조5452억원 대비 1조1830억원 감소한 것이다. 2022년엔 20조9946억원을 벌어 비용 17조6982억원, 법인세 등 7512억원을 냈다.
한은은 발권력을 동원해 화폐를 발행한 후 이를 금융기관 및 정부에 대출하거나 국공채 매입, 통화안정증권 발행, 외화자산 매입 등에 사용한다. 손해와 이익은 통안증권 발행금리, 외화자산 수익률, 환율 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은은 작년 이익이 줄어든 것에 대해 "외환매매익 및 유가증권매매익을 중심으로 총수익이 감소한 데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작년 말 한은의 외환보유액은 4201억달러로 1년 전 4231억달러에 비해 30억달러 가량 감소했다. 외화자산 운용 과정에서 현금성 자산 비중 10.0%에서 7.2%로 줄이고, 정부채 비중을 39.4%에서 44.8% 높였다. 한은은 “국제금융시장 변동성이 높게 유지되는 상황에서 신중한 운용 기조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ESG관련 자산 투자도 2022년 146.5억달러에서 작년 196.1억달러로 49.7% 늘어났다.
절반 이상인 9221억원은 정부에 세입으로 납부했다. 이 두가지 항목은 주체는 정부와 한은으로 다르지만 대체로 국가기관에 귀속되는 특성은 유사하다.
하지만 나머지 315억원은 조금 다르다. 한은은 이 금액에 대해 "농어가목돈마련저축장려기금 출연 목적으로 임의적립금으로 적립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중 5회에 걸쳐 기금을 출연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 기금은 농어민의 예금 이자를 높게 주기 위해 만든 기금이다. 은행이 목돈마련 저축 등 상품을 판매한 후 이차보전을 받는 식이다. 돈을 찍어내는 발권력을 동원해 수익을 내는 한은이 왜 농어민의 이자를 더 주고 있는 것일까. 한은이 이 기금을 임의로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법에 따라 내야하는 의무가 있다. 농어가목돈마련저축에 관한 법률 3조(우선지원)에 '정부, 「한국은행법」에 따른 한국은행(이하 “한국은행”이라 한다)과 저축기관은 이 법의 목적에 따라 농어민의 생활안정과 저축 의욕 고취 및 재산 형성을 지원하는 데에 필요한 조치를 우선적으로 마련하고 이를 실천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같은 법 7조 4항에는 '한국은행은 「한국은행법」 제12조에 따른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이 법에 따른 저축장려금의 지급이 종료되는 회계연도까지 매년 제9조에 따른 기금의 조달 및 운용계획에 따라 필요한 금액을 그 잉여금 및 적립금에서 기금에 출연하여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이런 조항에 근거해 한은은 매년 수백억원을 기계적으로 이 기금에 넣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9년 간 이익 중 3210억원을 기금출연용으로 냈다.
법령을 자세히 살펴보면 독소조항은 더 많다. 법에는 심지어 기금의 운용상 필요할 때 금융위원회가 한국은행으로부터 일시 차입을 할 수 있다는 내용도 11조에 담겨있다. 정부가 한은에 돈을 빌려서 농민들의 예금이자를 더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법은 1985년 농어가목돈마련저축에관한법률로 독립했다. 근로자 재형저축 지원이 1995년 종료된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법 도입 초기엔 근로자의 재산형성을 돕는 법이 있는 상황에서 이 혜택에서 배제된 농어민에 대한 형평성을 위해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농어민을 상대적인 약자로 보고 이같은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는 이 기금의 필요성에 대해 의구심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당시 재정경제부는 농어가목돈마련저축에관한법률 폐지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도시근로자와의 형평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고, 농어민의 소득 증대를 위한 직접 예산 지원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같은 계획은 농어민의 직접적인 반발과 농어민이 많은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2019년과 2022년 기금평가에서 이 기금에 '아주 미흡'으로 평가하면서 '폐지 권고'를 했다. 기금 존치에 대한 실익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의 기금 출연 의무도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 농어민 지원과 관련한 각종 비과세 혜택 등의 타당성과 적절성을 함께 검토해볼 때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그런데 이익 처리 내역을 자세히 살펴보면 특이한 항목이 있다. 농어가목돈마련저축 기금이다. 농민과 어민이 저축을 할 때 적용되는 예금 금리를 높여 주는 데 중앙은행의 이익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은 당기순이익 반토막
29일 한은이 발표한 2023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은 당기순이익은 1조3622억원으로 나타났다. 19조4469억원의 수익에서 17조5829억원의 비용과 5018억원의 법인세 등을 차감한 수치다.이는 2022년 2조5452억원 대비 1조1830억원 감소한 것이다. 2022년엔 20조9946억원을 벌어 비용 17조6982억원, 법인세 등 7512억원을 냈다.
한은은 발권력을 동원해 화폐를 발행한 후 이를 금융기관 및 정부에 대출하거나 국공채 매입, 통화안정증권 발행, 외화자산 매입 등에 사용한다. 손해와 이익은 통안증권 발행금리, 외화자산 수익률, 환율 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은은 작년 이익이 줄어든 것에 대해 "외환매매익 및 유가증권매매익을 중심으로 총수익이 감소한 데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작년 말 한은의 외환보유액은 4201억달러로 1년 전 4231억달러에 비해 30억달러 가량 감소했다. 외화자산 운용 과정에서 현금성 자산 비중 10.0%에서 7.2%로 줄이고, 정부채 비중을 39.4%에서 44.8% 높였다. 한은은 “국제금융시장 변동성이 높게 유지되는 상황에서 신중한 운용 기조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ESG관련 자산 투자도 2022년 146.5억달러에서 작년 196.1억달러로 49.7% 늘어났다.
농민 이자 더 주는 데 315억원 쓴다니
한은의 당기순이익 중 30%는 한은 기금으로 적립된다. 한국은행법에 따른 것으로, 작년에는 4087억원이 쌓였다. 적립금 잔액은 20조5466억원이다. 국가적 위기가 나타나 한은의 순손실이 큰 폭으로 발생하면 이 기금에서 우선 충당한다.절반 이상인 9221억원은 정부에 세입으로 납부했다. 이 두가지 항목은 주체는 정부와 한은으로 다르지만 대체로 국가기관에 귀속되는 특성은 유사하다.
하지만 나머지 315억원은 조금 다르다. 한은은 이 금액에 대해 "농어가목돈마련저축장려기금 출연 목적으로 임의적립금으로 적립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중 5회에 걸쳐 기금을 출연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 기금은 농어민의 예금 이자를 높게 주기 위해 만든 기금이다. 은행이 목돈마련 저축 등 상품을 판매한 후 이차보전을 받는 식이다. 돈을 찍어내는 발권력을 동원해 수익을 내는 한은이 왜 농어민의 이자를 더 주고 있는 것일까. 한은이 이 기금을 임의로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법에 따라 내야하는 의무가 있다. 농어가목돈마련저축에 관한 법률 3조(우선지원)에 '정부, 「한국은행법」에 따른 한국은행(이하 “한국은행”이라 한다)과 저축기관은 이 법의 목적에 따라 농어민의 생활안정과 저축 의욕 고취 및 재산 형성을 지원하는 데에 필요한 조치를 우선적으로 마련하고 이를 실천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같은 법 7조 4항에는 '한국은행은 「한국은행법」 제12조에 따른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이 법에 따른 저축장려금의 지급이 종료되는 회계연도까지 매년 제9조에 따른 기금의 조달 및 운용계획에 따라 필요한 금액을 그 잉여금 및 적립금에서 기금에 출연하여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이런 조항에 근거해 한은은 매년 수백억원을 기계적으로 이 기금에 넣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9년 간 이익 중 3210억원을 기금출연용으로 냈다.
법령을 자세히 살펴보면 독소조항은 더 많다. 법에는 심지어 기금의 운용상 필요할 때 금융위원회가 한국은행으로부터 일시 차입을 할 수 있다는 내용도 11조에 담겨있다. 정부가 한은에 돈을 빌려서 농민들의 예금이자를 더 줄 수 있다는 의미다.
1976년 만든 법, 49년째 돈 내는 한은
농어가의 목돈 마련을 돕는 이 법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76년까지 가야한다. 당시 운영되고 있던 근로자 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 지원 항목에 농어가를 추가하면서다. 당시 기사를 살펴보면 그때부터 한은은 이를 지원할 의무가 있었다. 농협과 수협이 연 18% 이상의 예금 금리를 보장해주고, 이차보상을 정부 또는 한은이 하도록 한 것이다. 한은은 당시 주로 예금을 취급하는 농수협에 대한 지급준비금을 조정해주는 방식으로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이 법은 1985년 농어가목돈마련저축에관한법률로 독립했다. 근로자 재형저축 지원이 1995년 종료된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법 도입 초기엔 근로자의 재산형성을 돕는 법이 있는 상황에서 이 혜택에서 배제된 농어민에 대한 형평성을 위해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농어민을 상대적인 약자로 보고 이같은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는 이 기금의 필요성에 대해 의구심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당시 재정경제부는 농어가목돈마련저축에관한법률 폐지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도시근로자와의 형평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고, 농어민의 소득 증대를 위한 직접 예산 지원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같은 계획은 농어민의 직접적인 반발과 농어민이 많은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2019년과 2022년 기금평가에서 이 기금에 '아주 미흡'으로 평가하면서 '폐지 권고'를 했다. 기금 존치에 대한 실익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의 기금 출연 의무도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 농어민 지원과 관련한 각종 비과세 혜택 등의 타당성과 적절성을 함께 검토해볼 때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