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이지만…연꽃처럼 '나'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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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불교미술이 그려낸 여성의 삶
호암미술관 -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여성, 불교미술의 열렬한 후원자 되다
국내외 걸작 92점 한자리에
여인을 연상시킨 '백제의 미소' 금동관음보살입상 95년 만에 귀향
머리카락으로 부처 표현한 '자수 아미타여래삼존내영도'도 눈길
차별적 교리에도…"다음 생은 이번 생보다 행복하길" 성불 염원
호암미술관 -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여성, 불교미술의 열렬한 후원자 되다
국내외 걸작 92점 한자리에
여인을 연상시킨 '백제의 미소' 금동관음보살입상 95년 만에 귀향
머리카락으로 부처 표현한 '자수 아미타여래삼존내영도'도 눈길
차별적 교리에도…"다음 생은 이번 생보다 행복하길" 성불 염원

이름 없는 한·중·일 여성들의 이 같은 강렬한 염원이 가득 담긴 걸작들이 지금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 나와 있다. 동아시아 여성들의 삶을 불교미술을 통해 조망한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 열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중·일에서 여성은 불교미술의 가장 큰 후원자였다. 이승혜 리움미술관 큐레이터는 “불교미술 작품들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과거 여성들의 삶을 돌아보는 훌륭한 창”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시아 불교미술을 통해 여성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전시 콘셉트는 처음이다.

95년 만에 만나는 ‘백제의 미소’
전시작들의 시대는 백제시대인 7세기 무렵부터 대한제국이 있었던 20세기 초까지를 아우른다. 작품이 제작된 곳도 고려 등 한반도는 물론 원나라와 청나라, 일본 등으로 다양하다. 이 중 가장 시선을 끄는 건 7세기 백제에서 만든 26.7㎝짜리 불상 ‘금동관음보살입상’이다. 1907년 충남 부여에서 한 농부가 발견한 이 불상은 1922년 일본인 수집가에게 팔려 1929년 전시를 마지막으로 한반도에서 모습을 감췄다.
일본 혼가쿠지가 소장 중인 15세기 조선 불화 ‘석가 탄생도’와 쾰른동아시아미술관 소장 ‘석가 출가도’의 만남도 주목할 만하다. 원래 한 작품이었던 이 그림은 세월이 흐르면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찢어졌고, 한반도를 떠나 흩어졌다. 기구한 운명을 겪은 두 작품이 고국에서 재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안타깝게도 석가 탄생도는 5월 5일까지 전시된 후 일본으로 돌아간다.


진흙 속 연꽃처럼
여성도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는가. 불교가 탄생할 때만 해도 그 대답은 ‘아니요’였다. 석가모니가 살았던 고대 인도가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기 때문이다. 전시 1부에서는 ‘여성의 몸은 깨끗하지 않다’는 인식이 담긴 일본의 회화 ‘구상시회권’ 등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와 종교가 요구하는 틀 속에서도 여성들은 끈질기게 공덕을 쌓아 주변 사람들의 안녕을 빌었고, 더 높은 존재가 되고자 했다. 문정왕후(1501~1565)가 발원한 ‘영산회도’와 ‘석가 여래삼존도’, ‘약사여래삼존도’ 등은 숭유억불(崇儒抑佛)을 내세운 조선에서 여성들의 후원이 불교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원과 함께 ‘금상첨화’

전시장 조명이 어둡다. 고려불화 등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작품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지만, 어두운 공간에서 보는 불교미술 특유의 금빛 광채가 신비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호암미술관이 자랑하는 미술관 부속 전통 정원 ‘희원(熙園)’에 피기 시작한 꽃과 함께 즐기면 말 그대로 금상첨화다.전시는 6월 16일까지.
용인=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