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 전기차 전용 공장 기공식이 열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 여덟 번째)이 김두겸 울산시장과 악수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지난해 11월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 전기차 전용 공장 기공식이 열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 여덟 번째)이 김두겸 울산시장과 악수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울산과 포항은 닮은 점이 매우 많다. 대한민국 대표 산업도시로 반세기 이상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룬 곳이다. 뒤이어 불어닥친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극심한 불황에 휩싸였던 점,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딛고 새로운 퀀텀점프에 성공한 과정이 닮은꼴이다.

울산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비철금속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포항은 세계적 철강 도시로 이름 나 있다.

대한민국 최대 부자 도시로 명성을 떨쳤던 두 도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사상 유례없는 불황에 휩싸였다.

일자리를 찾아 근로자들이 하나둘 떠나갔고, 두 도시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인구소멸 수렁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당시 울산과 포항은 장기 불황 여파로 생산 소비가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태에 빠지면서 기업 퇴출, 인구 ‘엑소더스(대탈출)’, 집값 폭락 등의 현상이 빚어지는 등 사실상 한국판 러스트벨트로 전락했다”고 분석했다.

러스트벨트는 미국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자동차산업)와 같이 한때 경제가 번영했다가 급속히 추락한 지역을 말한다.

○도전과 혁신으로 퀀텀점프

울산과 포항이 이런 장기 불황을 딛고 퀀텀점프에 성공한 핵심 원동력은 대한민국 지방비즈니스 시장을 자임하는 민선 단체장의 ‘도전과 혁신’ 덕분이다.

2022년 7월 김두겸 울산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현대자동차 전기차 공장 인허가를 1년 안에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변 기업인과 공무원들조차 냉소를 보였다. 지금껏 그렇게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 시장 지시에 따라 인허가 담당 공무원들은 시청 대신 매일 현대차 현장으로 출근해 기업 관계자에게 포괄적 컨설팅과 업무 지원 등을 했고, 허가 업무도 현장에서 처리했다.

이런 파격적 지원으로 울산시는 현대차 공장 건설 인허가 기간을 통상 3년 이상에서 10개월로 단축하는 기록을 세웠다.

삼성SDI의 2차전지 신공장 인허가도 2년6개월 정도 앞당겨 불과 6개월 만에 처리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올해 초 페이스북에 현대차 울산 신공장 건설 인허가 문제를 10개월 만에 처리한 울산시 사례를 언급하며 “이런 시장님, 이런 사무관님들이 더 많아야 한다”고 썼다.

지난 7년여간 멈출 줄 모르고 감소하던 울산 인구는 지난해부터 ‘상승 반전’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112만6795명(외국인 포함), 11월 112만6879명, 12월 112만7281명으로 4개월 연속 인구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영남권 5개 광역 지방자치단체(부산·대구·울산시, 경상남·북도) 중 이처럼 4개월간 인구가 증가한 곳은 울산시가 유일하다.

안효대 울산시 경제부시장은 “기업들의 투자 증대에 따른 선순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투자 유치 성과는 김 시장이 취임 초부터 공무원들을 사업 현장에 파견해 인허가를 돕는 등 ‘기업하기 좋은 여건 만들기’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분석이다.

○배터리 특구 도시로 변신한 포항

포항이 2차전지 특구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영일만 산단에 조성된 에코프로 포항캠퍼스. /포항시 제공
포항이 2차전지 특구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영일만 산단에 조성된 에코프로 포항캠퍼스. /포항시 제공
이강덕 포항시장은 철강산업 불황에 따른 인구 소멸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2017년부터 배터리(2차전지) 소재산업 육성에 승부수를 걸었다.

이로부터 6년이 지난 포항은 대한민국 최고의 배터리 소재 도시로 변신했다. 포항시는 이를 기반으로 지난해 2차전지 특구단지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지난 한 해 동안 7조원 넘는 기업투자 유치 성과도 거뒀다. 전체 투자 유치액의 76%가 2차전지 분야로 5조6000억원에 이른다. 3000여 명의 신규 고용도 창출했다.

급격히 감소세를 보이던 포항 인구는 지난해 10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12월에 50만 명선을 다시 회복했다.

포항시는 지난해 2차전지 특화단지 지정을 계기로 2030년까지 양극재 100만t 생산, 매출 100조원, 고용 1만5000명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생산, 기술, 인재 등 3박자를 모두 갖춘 ‘2차전지 메가클러스터’ 건설에 본격 나설 방침이다. 수소산업도 연료전지 클러스터에 관련 기업을 적극 유치하고 충전소를 비롯한 수소 인프라를 확충해 특화단지로 지정받을 계획이다.

올해 착공 예정인 국제전시컨벤션센터를 중심으로 마이스(MICE: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산업을 육성하고, 호미반도 국가해양정원을 동해안을 대표하는 해양 휴양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동해안 해오름동맹으로 협력하는 두 도시

김두겸 울산시장(왼쪽 첫 번째부터)과 이강덕 포항시장, 주낙영 경주시장이 지난해 11월 울산 롯데호텔에서 상생협약을 맺었다. /울산시 제공
김두겸 울산시장(왼쪽 첫 번째부터)과 이강덕 포항시장, 주낙영 경주시장이 지난해 11월 울산 롯데호텔에서 상생협약을 맺었다. /울산시 제공
울산시와 포항시는 경주시와 함께 초광역 경제권(메가시티)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울산 포항 경주 등 세 도시로 구성된 해오름동맹은 산업, 관광, 교통, 물류 등 상생협력사업을 이끌 사무국을 오는 7월 출범하기로 했다. 해오름동맹은 2016년 6월 울산~포항 고속도로 개통을 계기로 세 도시가 상생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시작한 도시연합이다.

김두겸 울산시장과 이강덕 포항시장, 주낙영 경주시장은 지난해 11월 울산 롯데호텔에서 ‘2023 하반기 해오름동맹 상생협의회’를 열어 해오름동맹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신성장 거점으로 육성하기로 뜻을 모았다.

해오름동맹은 신라광역경제청(가칭) 설립 논의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신라광역경제청이 현실화하면 세 도시의 경제적 협력을 통해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고, 생산비용이 절감되는 등 통합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무국 설치는 본격적인 초광역 경제권 구축 논의를 위한 사전 작업 성격이라는 것이 해오름동맹사무국 관계자의 설명이다.

해오름동맹 세 도시의 인구를 합하면 지난해 말 기준 약 200만 명이다. 지역내총생산(GRDP)은 2020년 기준 100조원에 달한다.

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