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대질을 하는 민원인의 모습. 서류를 A씨에게 들이밀거나, 의자에 던지는 모습도 있었다. A씨는 위협을 느껴 폐쇄회로(CC)TV화면 밖으로 피한 상황이다. /사진=제보자 제공
삿대질을 하는 민원인의 모습. 서류를 A씨에게 들이밀거나, 의자에 던지는 모습도 있었다. A씨는 위협을 느껴 폐쇄회로(CC)TV화면 밖으로 피한 상황이다. /사진=제보자 제공
"어이 당신, X인지 된장인지 모르는 사람이야. 왜 이따위로 일을 처리해? 당신이 인간이냐. 당신은 쓰레기야."

중앙부처 소속 7급 공무원 A씨가 근무 중 민원인에게 들은 폭언이다.

A씨(40대)는 2020년 9월 근무 도중 112에 신고를 해야 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민원인이 난동을 부려서다. 앞서 A씨는 해당 민원인이 퇴직금을 받지 못해 신고한 건에 대해 '내사 종결' 처리를 했다. 민원인이 하루 2시간씩 근무한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였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상 퇴직금을 받을 수 없어 A씨도 별다른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A씨는 민원인에게 사건이 종결된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했지만, 민원인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A씨 앞에서 서류를 흔들며 큰 소리로 폭언을 쏟아붓고 삿대질했다.
A씨의 신고로 출동해 흥분한 민원인을 진정시키는 경찰. /사진=제보자 제공
A씨의 신고로 출동해 흥분한 민원인을 진정시키는 경찰. /사진=제보자 제공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민원인을 진정시킨 후 밖으로 내보내며 마무리됐지만, 불안감에 휩싸인 A씨는 일주일간의 고민 끝에 모욕죄로 민원인을 형사 고소했다. 고소를 접수하는 입장에서도 송사는 부담이었다.

그런데도 고소를 진행한 이유에 대해 A씨는 "여기서 관두면 계속 민원 재신고를 해 찾아올 거다. 악성 민원인도 안다. 여기서 난동 부려도 일이 쉽게 커지지 않는다는 것을"이라며 "담당자를 바꿔 또 다른 동료에게 폭언을 해댔을 거다. 제가 고소한 건 일종의 보호 수단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당 민원인은 형사 고소를 당한 상황에도 같은 사안으로 담당자를 바꿔 민원을 재신고했다. 또다시 내사 종결 처리가 되자 이번엔 변경된 담당자를 직무 유기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스스로 방어 태세를 취하지 않으면 억울한 송사에 휘말릴 수 있는 구조다.

2022년 4월, 1년 7개월이라는 지난한 시간이 지나고 대법원 상고 기각 끝에 민원인의 모욕죄가 인정돼, 150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A씨에게 언성을 높이는 민원인의 모습. /사진=제보자 제공
A씨에게 언성을 높이는 민원인의 모습. /사진=제보자 제공
A씨가 원하는 건 손해배상이 아닌 '본보기'였다. 그는 "근무 중 심각한 피해를 보고도 경직된 공무원 사회에서는 '혹시 뒷말이 나올까', '일을 키우면 괜히 피곤해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쉬쉬'하는 분위기인 것이다. 이어 "고소는커녕 경찰 신고조차 쉽지 않다"며 "악성 민원인으로 인한 피해는 모든 부처에서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A씨는 해당 사건의 충격과 긴 재판 과정으로 체중이 8kg 넘게 빠졌다. 지칠 대로 지친 그는 결국 2021년부터 공상 휴직을 인정받아 쉬고 있다. 그는 "지난해까지 두문불출하며 살았다"며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워 집에서 지냈다"고 말했다. 이어 "올 연말에는 복직 계획이 있어 운동하며 건강을 회복하려 한다"고 부연했다.

13년 전 3년의 수험 생활 끝에 7급 공채로 입사해 공직 생활을 이어온 A씨가 가장 큰 업무 스트레스로 꼽는 것은 당연히 대민 업무다. 매일 10여명의 민원인을 상대해왔다. 중간중간 있는 '전화 폭탄'은 기본이다. 사무실에서 민원인들이 언성을 높이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공직 생활 시작 후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살았던 그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신체화장애 판정을 받기도 했다.

공무원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은 달리 없었다. A씨는 "분위기까지 경직돼있으니 폭언을 듣는 상황 속에서도 선뜻 동료를 위해 쉽게 나설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김포시, 남양주시 등에서 공무원들이 연이어 사망한 사건에 대해 "'이런 일로 목숨을 저버리냐' 말씀하는 분도 있을 테지만, 직접 겪어보면 이해할 것"이라며 "협박을 들을 때면 '방금 나간 민원인이 건물에 불을 지르면 어쩌지' 이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든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A씨는 현재 복직을 준비하고 있다. 불합리한 피해를 본 시민을 도울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뿌듯함도 자주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민 업무는 아직 두렵다. 그는 "아직도 주변에선 공무원이 안정적이고 편하지 않냐고 한다"며 "휴직 전까진 가족조차 업무의 고충을 공감해주지 않아 더 외로웠다"고 털어놨다.
공무원 감정노동 수준 조사 결과. /사진=인사혁신처
공무원 감정노동 수준 조사 결과. /사진=인사혁신처
지난해 9월 인사혁신처가 처음으로 중앙행정기관 소속 공무원 1만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가공무원 감정노동 실태조사' 결과, 폭언·협박 등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의 감정노동은 정서적 손상, 감정 부조화를 초래하는 '위험' 수준이었다. 원인으로는 장시간 응대, 무리한 요구 등 업무방해(31.7%)가 가장 많았고, 폭언·협박(29.3%), 보복성 제보·신고(20.5%) 등이 뒤를 이었다.

이름을 내걸고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무원에 반해 정작 업무상 입을 수 있는 피해에 대해 공무원을 보호하는 방법은 없다는 목소리가 크다. 실제로 공무원의 46.2%는 감정노동 대응 방법으로 '참아서 해결한다'고 답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5년 미만 공무원 퇴직자의 수는 2019년 6500명에서 2022년 1만3032명, 2023년 1만3566명으로 급증했다. 4년 새 2배 넘게 늘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공무원 퇴직자 중 자발적으로 공직을 떠난 비율은 59.2%에 이른다. 2018년 45.2%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퇴직자 절반 이상이 자발적으로 공무원증을 반납하고, 젊은 공무원 퇴직자가 늘고 있다는 점을 종합해보면 힘든 고시 생활로 얻은 공무원증을 내놓을 만큼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고 풀이된다.

이에 정부도 대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공무원 업무집중 요건 조성 방안'을 발표했다. 6급 이하 국가 공무원 2000명의 직급을 한 단계씩 상향 조정하고, 승진에 드는 기간을 단축한다는 것이 골자다. 초과근무수당을 현실화하고 연가도 확대할 방침이다.

민원 담당 공무원에 대한 자구책도 마련했다. '악성 민원 전문가'로 구성된 핫라인 전담 조직을 만들고 악성 민원 담당 공무원에게 월 3만원의 업무 수당과 승진 시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한편 A씨는 "솔직히 주변 동료 중 만족하면서 공직 생활하는 분 못 봤다"며 "겉으로 드러난 악성 민원 사건은 정말 빙산의 일각이다. 누구 하나 나설 수 없는 경직된 분위기부터 해결하지 못하면 문제는 계속 곪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