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정부는) 의제를 제한하지 않고 (의사들과) 건설적인 대화를 해서 좋은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는 “의대 2000명 증원안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와 여권의 기류가 바뀐 것인지 관심을 끈다.

이날 총선 지지유세를 위해 울산 남구 신정시장을 방문한 한 위원장은 ‘의대 증원 규모 조정은 안 된다는 정부 입장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민 건강을 위해 의사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이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2000명도 타협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저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대화를 함에 있어서 의제를 제한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 규모까지 포함해 정부에 유연한 협상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 비슷한 질문에 한 위원장이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도 한발 나아간 입장이다.

한 위원장은 지난 24일에도 정부와 의사단체 간 중재를 시도한 바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관계자를 만난 뒤 대통령실에 “의료현장 이탈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유연하게 처리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26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던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을 무기한 유예했다. 좀처럼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고 있는 정부와 의사단체 갈등 과정에서 한 위원장이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사태 장기화가 다음달 총선에서 여당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안철수 후보(경기 분당갑)와 최재형 후보(서울 종로) 등 수도권에 출마한 여당 후보들도 이날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리는지를 놓고 양측이 한 발씩 물러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안 후보는 “국민이 피해자가 되는 의·정 강 대 강 충돌을 여기서 끝내야 한다”며 2000명 증원을 재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최 후보도 “정부도 문제의 핵심인 의대 정원에 대해 좀 더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대화의 물꼬가 트이지 않을까”라며 “논의를 통해 ‘얼마나 증원하는 것이 합리적인가’에 대해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2000명 증원에 대해 재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 위원장의 발언은 대화에 의제를 제한하지 말자는 원론적인 얘기가 아니냐”며 “정부 역시 모든 의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증원 규모는 이미 확정됐고 이를 다시 검토하는 것은 혼란만 부추길 것”이라고 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